연중 제31주일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2010년 10월 31일-다

루카 19,1-10

<들어가면서>

연중 제31주일인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금 어떤 생각이나 정서가 일어납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생각이나 정서는 어떠합니까? 대답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말씀하지 않는 가운데에도 스스로의 마음자리에 떠오르거나 흐르는 생각이나 정서는 있을 것입니다.

제 마음에 떠오르는 한 생각은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나오는 시어(詩語)입니다. “......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 사철 발 벗은 아내가 /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이라고 읊고 있는 노랫말이 가슴에 여울집니다.

<말씀과 함께>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 19장의 “예수님과 자캐오”의 이야기입니다. 이 복음 말씀은 루카의 특수사료 중에 하나로, 루카복음서의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와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를 연상(聯想)하게 합니다. 예리코를 배경으로 하는 자캐오 이야기는 바로 그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에 나오는 세관장(세관원)의 회개(루카 18,13)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여겨집니다.

복음사가 루카의 보도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집을 찾아 머무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캐오의 삶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변합니다. 그는 일어서서,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8절)라고 선언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9-1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자캐오”란 이야기의 지리적인 배경으로 언급되는 예리코는 요르단 강 서쪽, 사해 근처에 자리 잡은 오아시스 도시인데 거기에는 유다 지방과 요르단 강 건너 베레아 지방간의 교역을 감시하는 세관이 있었습니다. 자캐오는 그 세관의 세관장이었습니다. 당시 관세는 지방세로서 갈릴레아에서는 그 지방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가 거두어들였습니다. 그러나 관리를 두어 직접 징수하지 않고, 세관별로 임차료만 받고 일정한 기간 동안 관세 징수권을 민간인에게 빌려 주었습니다. 임차대계약에 따라 실제로 관세를 징수하는 민간인이 곧 “세관원”이었습니다. 세관원은 흔히 이방인들과 접촉할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관세를 많이 매겨 부당하게 치부했기 때문에 직책상으로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유다교를 올바로 믿으려면 세관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복음사가 루카는 회개(悔改)(루카 15,7 참조)와 자선(慈善)(루카 11,41; 12,33; 16,9; 19,8)을 남달리 강조하는데, 바로 죄인취급 받아오던 자캐오가 회개의 결단으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기로 작심한 본보기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5절)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9절) 등의 말씀을 생각하면, “예수님과 자캐오”의 이야기에는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활약하시는 동안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구원의 현재성’이 두드러집니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찾아오시어 함께 머무시는 주님을 알아차리고, 돌무화과 나무에서 내려온 자캐오처럼 위신이나 체면, 가식이나 거짓, 오만이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이 반영된 사도행전에는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전도한 보고 중에,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사도행전 11,14)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와 실라스가 필리피에서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게 되는 사건 중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화에는 중요한 선택의 몫이 드러나 있습니다.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행전 16,30-31)

<이야기 속으로>

“돌편지!”

“돌편지?”

“옛날엔 말이야, 문자가 없을 때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닮은 돌을 주워서 상대방에게 전해 줬대. 받은 사람은 그 돌의 감촉이나 무게를 가지고 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렸대. 음……. 예를 들면, 화가 났을 때는 마음에 평화를 바라고, 힘들 때는 상대방을 걱정한다든가 말이야.”

2008년 몬트리올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굿바이 Good & bye｣란 영화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도쿄에서 잘나가는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인 다이고가 갑작스런 악단(樂團) 해체로 아내 미카와 귀향합니다. 생존을 위해 일터를 찾다가 주검을 염(殮)하고 화장(化粧)하여 널에 안치하는 염습사로 일하게 됩니다. 아내와의 극심한 갈등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보조자에서 전문 염습사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때 자기를 버리고 떠나갔다는 생각에 여전히 애증(愛憎)이 끓고 있는 아버지의 운명 소식을 듣고 갈등하게 됩니다. 아내와 함께 찾아간 어촌의 보건센터에서 아버지의 주검을 염습하는 중에 꼭 쥔 손안에서 작은 돌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다이고가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그 돌, 그 “돌 편지”였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되살아나는 진인(眞人)으로 체읍하며 흘리는 뜨거운 눈물에 부자(父子) 간의 갈등은 녹아내리고, 아내 미카와 마주치는 다이고의 시선에는 참사랑이 갈마듭니다.

<나오면서>

마치 “돌편지”를 손에 쥐어주듯이 자캐오에게 “얼른 내려오너라.”고 말씀을 건네시는 주님, 오늘 여기 이 성전에 있는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금 이 시간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0절)고 일깨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마음과 삶, 가정과 일터에 찾아오시어 머무시려는 주님을 알아 뵙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도 새로운 믿음과 용기로 일상생활 중에 크고 작은 변화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신앙인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소서. 풍요와 물듦의 계절에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 물들게 하소서. 아멘!

庚寅年 晩秋 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