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

2010년 10월 10일-다

루카 17,11-1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열 사람을 치유해주신 이적사화는 기적적 치유보다는 치유 받은 이들의 대조적인 처신에 이야기의 역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나병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나병이라고 했습니다. 나병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가오면 “불결, 불결”하고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예루살렘과 기타 성곽도시에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다른 곳에서 따로 살아야 했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4장 1-32절에는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례”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나병환자가 다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관에게 치유 사실을 인정받은 다음 제사를 바쳐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다가 나병 환자 열 사람을 만납니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이어서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몇 번의 큰 기회를 만난다고 합니다. 오늘 독서들과 복음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루카복음서에서 자주 나타나듯이, 기적은 그 자체로는 미완의 것으로서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기 위한 사건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깨끗해진 열 사람 가운데 오직 돌아온 한 사람만이 구원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 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아홉 사람도 분명히 나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주님을 만나지 못하였고 그들의 실존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나머지 아홉 사람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들은 되찾은 건강을 당연지사(當然之事)로 여긴 것은 아닌가? 이들 아홉은 그토록 감동적인 순간에‘오늘’을 살지 못하고‘내일’에 미루고 말았던 것이 아닐까? “이제 나병이 나았으니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라고 중얼거리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말로 인해 이들은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구원’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팽개쳐버렸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오늘의 태양 아래서 도전하고 행동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내일의 태양은 영원히 내일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어느새 태양은커녕 여명조차 보지 못하고 생은 마감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특히 ‘내일’이라는 단어에 가장 많이 희생당하는 일은 “긴급하지 않아 보이는 소중한 일”입니다. 예컨대, 신앙인이면 매일 해야만 하는 성경읽기(Lectio Divina), 건강 챙기기, 자녀들과 함께 식사하기, 집안일 함께 하기, 배우자와 고민나누기, 꿈을 위한 실천 등.

사람들은 실지로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급한 일들을 위해 정작 중요한 “성경읽기(Lectio Divina)나 건강이나 가족 간 유대를 위한 일들은 언제나 가능한 것처럼 미루고 나중에 여유가 생겼을 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그러한‘내일’은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기억과 감사”는 신앙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2티모테오 2장 8-9절) 우리의 복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병으로부터 치유 받은 이방인인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과 사마리아 사람처럼 감사드릴 줄 아는 것입니다.

남에게 베푼 것은 즉시 잊어버리고, 남에게 입은 은혜는 가슴에 깊이 새겨 늘 기억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면 신앙도 사라지고 축복도 사라지고 맙니다.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살 수도 있지만 매사를 불평불만 속에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복음에서 사마리아 사람이나 이방인인 나아만이 단순히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 돌아온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또한 엘리사의 하느님이나 예수님 역시 당신이 베푼 것에 상응하는 어떤 보답을 바라는 옹졸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들이 돌아온 것은 주님과 일치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구원’이라는 가장 값진 선물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