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2010년 10월 3일-다

루카 17,5-10

일전에 한 후배 신부에게 최근에 나온 저의 책 <사막에서 길을 묻다> 를 선물했습니다. 그는 그 책을 받고 너무 기뻐하며 대뜸 농담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요즈음, 제 영성이 바닥 치고 있었는데요!” 저는 이때 처음으로 “바닥치다” 라는 용어가 영성과 연결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즈음 영성, 혹은 관상이라는 용어들이 너무나 흔하게 사용되고 있어 본래의 그러한 의미들이 많이 퇴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영성, 음악영성, 미술영성, 병원영성, 나중에는 거지영성, 도둑질 영성 이란 용어까지 나올 듯 합니다. 오늘날 모든지 다 갖다 붙이면 다 영성이 되나 봅니다. 그러나 사실 영성이란 Spiritus에서 나왔는데, 그것은 곧 혼을 뜻합니다. 영성생활이나 수도생활도 혼을 실어 살 때 진정으로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어떻게 우리의 삶이 바닥치지 않고 혼을 실어 살 수 있는지 오늘 말씀은 그 실마리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루카 17,6)

이 구절과 병행하는 다른 공관복음을 보면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에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져라 해도 그렇게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은 돌무화과 나무의 상징대신 산의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산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도 마태오는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라!”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에 마르코에서는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돌무화과 나무이든 산의 이미지이든 혹은 저곳이든 아니면 바다이든 이들 본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공통적으로 믿음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진실로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면 그것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약할 경우 참된 치유나 기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에 의하면, 믿음이 약했던 제자들은 간질병에 걸린 사람을 치유하지 못했습니다(마태 17,14-20). 반면에 “한 말씀만 하시면 제 종이 낫겠나이다!”라고 고백했던 백인대장의 모습에 예수님은 크게 감탄하시면서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결국 신앙의 여정을 가면서 참된 믿음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일상 안에서 치유나 기적도 또한 그분을 올바로 따라 갈 수도 없습니다.

2.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

인간은 자기 실존에 대한 자각을 할수록 하느님 앞에 참으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눈뜨게 됩니다. 사막의 한 교부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만큼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됩니다”(마토에스 2).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을 뵈오면서 자신을 불쌍하고 순결치 못한 자로 고백했습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수도자가 겸손의 단계를 올라가면 갈수록, 자신이 하느님 앞에 미천한 벌레와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서,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함에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온갖 문제들이 나오게 됩니다. 사실 인간의 교만과 교활함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에게 슬픔과 좌절을 안겨 줍니다. 그러나 겸손은 하느님과 참된 관계를 맺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참된 행복에 도달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겸손되이 우리가 해야 할 일, 그리스도인으로서 혹은 수도자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그분 발치에 나아가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 합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다 하였을 뿐입니다!”

3.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입니다. 특별히 사제들이나 수도자들은 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교회의 의무를 실행합니다. 사제들은 구체적인 말씀 선포를 통해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있으며, 수도자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삶의 양식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특별히 공동생활과 하느님의 일인 시간전례를 통해 직접 간접으로 이러한 복음선포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선포는 항상 좋은 상황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모든 조건이 잘 갖춰진 상항도 있을 수 있지만, 때로는 여러 고통들과 어려움들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오늘 제2독서는 바로 이러한 복음 선포를 위한 고난의 길에 기꺼이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선포는 인간의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과 힘에 의지함이 중요합니다. 그때 복음선포는 참된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영성이 바닥 치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이,

끊임없이 하느님의 자리를 넘보며,

복음선포의 고난이 길에 기쁘게 동참하지 못할 때,

우리의 영성은 당연히 바닥을 칠 수 밖에 없습니다.

순례의 여정을 가면서 우리는 겨자씨 한 알만한 굳은 믿음과 겸손을 지니고 혼을 실어 그분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혹은 수도자로서 하느님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증거함에 있어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이때 혼을 실어 살아감이 가능하게 됩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굳은 믿음을 갖고 주님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특별히 오늘 이 미사 중에 주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합시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