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

2010년 9월 26일-다

루카 16,19-31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여름철 그 무더위도 한풀 꺾여 아침 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합니다. 추석은 잘 지네셨습니까? 그 동안 찾아 뵙지 못한 조상님들의 묘소(墓所)를 친인척들과 함께 찾아 뵙고 기도 드리면서 죽음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보니 갑자기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릅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은 그 어떤 묘비에 쓰여있는 말보다도 진솔하고 울림이 크게 느껴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자로의 삶과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구원의 길에 이르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부자와 나자로의 인생은 삶과 죽음 앞에서 한 편의 인생역전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합니다. 살아생전 부자는 왕권이나 높은 권력(판관 8,26)을 상징하는 자색 옷과 영예와 호사(잠언 31,22; 에스 8,15)를 뜻하는 모시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이에 반해 나자로는 종기투성이 몸으로 부자의 문간에 누워 부자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하루하루 삶을 연명했습니다. 나자로는 앉아 있는 것도 아닌 누워 있습니다. 아마도 허기가 져 움직일 힘조차 말할 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단지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개들조차 나자로의 종기를 핥아 귀찮게 합니다.

이러한 부자와 나자로의 삶은 죽은 이후에 운명이 바뀝니다. 부자는 지옥으로 나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이러한 운명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부자가 부정한 수단 방법으로 재물을 모았거나 약자를 괴롭혔다는 말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자로가 선행을 했다는 말 또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부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으로 가고, 가난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는다면 부자는 모두 지옥으로 가야만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문간에 누워 비참한 몰골로 있는 나자로를 돌보지 않고 방치한 부자의 태도에서 쉽게 풀립니다.

부자는 자신의 처지는 그렀다 해도 다섯 형제까지 지옥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청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이 가운데서 누가 다시 살아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가난한 이를 돌볼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자의 결실입니다. 즉 모세와 예언자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가난한 이를 돌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아 온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은 바로 하느님이시고 이를 베풀어 축복해 주신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관리자에 불과합니다. 만일 부자가 자신의 영예와 권력을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셨음을 알고 회개했다면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를 모른 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자로는 부자에게 있어서 그 동안 자신의 삶을 회개하는 하나의 기회였습니다. 이를 깨닫지 못한 부자의 사후 운명은 "혀를 식히기 위해 손가락 끝의 물 한 방울"이 아쉬울 정도입니다. 이것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부자 자신이 스스로 하나씩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푸는 사람이며, 바로 그 때문에 더 많은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종점에 이릅니다. 그 때 교회가 그리스도의 자녀에게 부여한 숙제의 이행 여부는 오늘 복음 말씀의 비유에서와 같이 하늘 나라에서 온전히 내신성적으로 반영될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복음 말씀을 충실히 실천하는 자의 몫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이를 충실히 실천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