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일

2010년 9월 19일-다

루카 9,23-26

도입부

오늘은 연중 제25주일입니다. 어느 때보다 덥고 변덕스러웠던 여름도 아침 저녁의 스산한 바람과 함께 조금씩 사그라진다는 느낌을 받고, 또 달력을 보니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코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렇게 일 년 중 가장 풍요로운 계절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안을 보나 밖을 보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더 풍요롭거나 행복해 보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풍요나 행복은 우리가 가진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넉넉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시도록 청하며 우리의 잘못을 겸허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청합시다.

강론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내용은 재물에 관한 일련의 가르침입니다. 원래 서로 다른 짧은 이야기들이 재물이라는 주제로 함께 묶여져있기 때문에 일관성은 없어 보입니다. 어쨌든 재물에 관한 메시지는 공관복음 중에 루가 복음서의 특징적 주제로서 오늘 복음의 내용을 읽어보면 ‘재물이나 부 자체가 곧 악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재물은 불의한 것으로서 빛의 아들들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더 슬기롭게 다루고, 기껏해야 벗들을 사귀는데 사용하며 하느님을 업신여기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재물과 가난에 대한 문제는 가난을 서원하는 수도자들뿐 아니라 일반 신자들에게도 하나의 도전입니다. 모든 가치 기준이 재화와 이익에 따르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물 없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느 정도의 생활수준이 보장되어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수도자 개인뿐 아니라 수도원들 역시 같은 기준에서는 아니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하고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사람과 재물이 필요하다는 면에서 재물의 소유와 가난 사이에서 딜레마를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가난이란 무엇이며 어떤 기준으로 그 가난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가난 자체가 하나의 덕이나 가치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힘없고 소외되며 착취당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빈곤과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보호자요 대변인임을 경험합니다.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오직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신다는 경험입니다. 성서가 가난의 주제를 신중하게 다루고 더 나아가 하나의 이상처럼 제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복음적 권고로서 수도자들이 가난을 서원하는 것도 이런 경험의 연장선상 위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하실 만큼 그들을 사랑하시고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예수께서 가난의 모범을 보여주셨기에 수도자들은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야 하는 가난은 그리스도의 가난입니다.

물론 복음서 안에서 예수께서 가난을 특별한 덕이나 가치로 생각하셨거나 그것을 일부러 추구하셨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동안 기꺼이 죄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는 비난을 들었고, 또 당신 주위에는 당신께 봉사하는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신 분이 스스로 인간이 되신 탄생, 실제로 가난한 가정 안에서의 성장, 그리고 공생활 동안과 특히 십자가 위에서의 그분의 죽음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난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가난은 성서의 전통대로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일치, 그리고 성부께 대한 온전한 의탁과 신뢰의 표지였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결국 재물에 대한 오늘의 경고 말씀은 재물 자체에 대한 단죄라기보다는 재물이 지니고 있는 어두운 매력과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에 대한 경고로 알아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모스가 지적하는 대로 재물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홀립니다. 예언자는 재물과 재물이 주는 거짓된 행복에 사로잡혀 어떤 불의한 일을 통해서라도 재물을 쌓아두고자 하는 우리 마음에 대해 엄중히 경고합니다. 우리가 흔히 ‘있는 사람이 더 한다.’고 말하듯이 사람은 재물을 사용하는데서 쾌락을 느끼는 것뿐 아니라 재물이 보장해줄 것만 같은 거짓 행복 때문에 그리고 모으는 재미만으로도 재물에 집착합니다. 요는 그 재물이 하느님을 바라보는데 방해되거나 하느님을 제치고 첫 자리에 오는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가난과 재물에 대한 가르침은 분명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우리 삶의 모습은 막연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난을 사는 것인지, 그리고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우리가 가난을 얼마나 실천하고 사는지 판단하기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가난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 마음은 너무도 쉽게 좀 더 나은 음식, 의복, 물건으로 쏠리기도 하고 또 공동체적으로도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나눔의 형태를 지닌다 하더라도 우리의 청빈은 쉽게 이념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리거나 현실이라는 핑계 하에 타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의 가난은 가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런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원의와 의지에서 힘을 얻을 때만 온전히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빈이란 완전한 무소유를 뜻한다기 보다는 일상의 삶 속에서 노동하는 자세, 나에게 맡겨진 물건과 재물을 다루는 자세, 필요한 것만으로 만족하는 마음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일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분을 채우려 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가난을 끌어안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작은 행복으로 받아들일 때 어렵고 불편한 가난이 아니라 훨씬 더 가깝고 친숙하며 사랑할 수 있는 가난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