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오르간 축복식 강론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2010년 8월 29일

루카 14,1.7-14

들어가면서

오늘 미사전례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먼저 파이프 오르간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지금 우리는 독일 남부에 있는 토마스 얀(Thomas Jahn)이란 오르간 제작회사에서 만든 41스톱(stop, 음전), 2747개의 파이프로 제작 설치한 장중한 파이프 오르간(몸체 무게 10톤, 파이프 길이 최고 9m)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례 거행을 더욱 장엄하고 아름답게 해줄 파이프 오르간을 마주하는 제대 앞에서 지금 이 시간 새삼스레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이끌립니다.

들어와서

먼저 오늘의 독서와 복음에 대하여 얘기하기 전에 하나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 수도원 안내실로 오르는 계단 옆의 큰 돌에 새겨진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글귀를 보셨습니까? 그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이역만리 낯선 땅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피땀을 흘렸던 수도형제들을 기리고자 삼가 이 빗돌을 세웁니다.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백주년을 기념하며 이천구년 구월 이십오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1909년에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을 한국에 파견했던 독일 오딜리엔 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아빠스는 1911년에 몸소 한국을 방문하여 넉 달 동안 이 땅, 이 민족의 문화와 풍습을 둘러보며 290여장의 사진에 담고 글을 쓰게 됩니다. 그리하여 1915년에 출판하게 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란 책에서 “이 책의 독자들이 내가 고국에 품고 돌아온 한국과 한국민족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진술합니다.

지난 100년의 흐름을 이어 사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수도자들에게는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과업들과 새로운 과제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도와 동료 순교자들’ 38위에 대한 시복시성을 준비하는 문제입니다. 100년의 역사를 기리는 대성전에 설치된 장중한 파이프 오르간과 함께 전례 음악이 흐르는 대성전의 제대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란 물음과 더불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현양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입니다.

복음: 루카복음서 14,1.7-14

오늘 복음은 초대받은 손님으로서의 처신과 초대하는 주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한 예수님의 훈계입니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초대받은 손님으로서의 처신은 모름지기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처신이 현명한 처세술이라는 말씀입니다. 현세와는 달리 종말에는 그 지위가 전도된다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14,11)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유행어였겠습니다. 종말론적 의미를 생각하는 현명한 처세술은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겸손에 대하여 열 두 단계로 말하는 베네딕도는 수도규칙을 집필한 1500년 전의 구도자 누르시아의 베네딕도의 심중을 헤아리게 합니다.

12 예수께서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이는 초대하는 주인으로서의 태도에 대한 나자렛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주고받는 대인관계,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대인관계를 넘어서라는 훈계입니다. 그렇게 처신하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실은 종말에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초대하는 주인으로서의 태도는 곧 예수님 자신의 처신이기도 합니다.

제1독서: 집회서3,17-18.20.28-29

17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18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20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28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29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

첫 번째 독서인 집회서(3,17-18.20.28-29)의 말씀은 복음말씀과 뜻이 잘 통합니다. 집회서의 본래 저자, ‘시라의 아들(벤 시라) 예수’는 “인간 삶 안에서의 하느님의 지혜”(2-23장)와 “자연과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지혜”(25-50장)를 서술합니다. 오늘 독서 부분은 “지혜로운 인간의 덕목들”(2,1-4,10)에 해당되는 말씀들입니다. 오늘 독서말씀 중에는 먼저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등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200년 전에 벤 시라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동정심과 관심, 그들을 지원하고 돕기 위한 의무감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자기 민족의 전통과 믿음을, 유다 종교의 가치와 진리를 재확인시킵니다. 비록 외국 사상(그 당시 헬레니즘, 그리스 문화와 삶의 방식)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자신들의 신앙을 위협한다면 필요치 않은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벤 시라는 현인으로 예언자적 권위를 가지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이”와 “거만한 자”란 표현처럼, 선과 악, 생명과 죽음, 사랑과 미움 등 명암(明暗)이 공존(共存)하는 세상사를 직면합니다. “만물이 서로 마주하여 짝을 이루고 있으니, 그분께서는 어느 것도 불안전하게 만들지 않으셨다.”(42,24) 벤 시라는 비록 자기 자신을 반대하는 존재도 하느님께서 만드셨으니 그들도 자기 삶에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참으로 수용하거나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명한 마음”, “주의 깊은 귀”라는 표현과 함께 일어나는 생각은 ｢베네딕도 수도규칙｣ 머리말의 첫 단어입니다. “Obsculta, o fili", "경청하여라, 아들아”라는 표현입니다. 스스로 재앙에 빠지는 어리석음과 분노와 탐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주의 깊은 귀”, 마음의 귀를 열어 경청하는 삶의 태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자각하게 합니다.

나가면서

이 시간 먼저, 성음악 분야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는 파이프 오르간 축복식과 더불어 펼쳐지는 전례음악의 아름다움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따금씩 아름다운 음악에 가슴을 열듯이,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물음과 함께 좀 더 자주 제대 앞이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의 귀를 열어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거듭 음미하면서 겸손이라는 종말론적인 처세술과 더불어 이해관계의 득실을 넘어서는 예수님 자신의 처신에 다시 눈 뜨고 귀 열어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육화(肉化)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간다는 한 사람의 구도자로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주의 깊은 귀”, 경청하는 마음의 삶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