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

(2010년 8월 8일-다)

루카 12,32-48

오늘의 첫째 독서인 지혜서에서는 출애굽을 감행한 히브리인들의 믿음에 대해 들려줍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은 주어진 여건에 그저 순응만 하고 산 것이 아니라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며 출애굽을 시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불립니다. 저자는 먼저 믿음의 의미와 특징을 밝힌 다음, 아벨에서 비롯하여 마카베오 시대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위대한 조상들을 길게 열거합니다. 등장인물의 순서는 대체로 구약성경의 역사 순서를 따르는데 즉,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사악, 야곱, 요셉, 모세,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등 15명의 의인과 예언자들”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인물들을 소개하며 독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유다 미드라쉬 강론 형식을 따른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주제어가 후렴 형식으로 중간 중간에 반복됩니다. 무려 29번이나 반복됩니다.

오늘의 둘째 독서인 히브리서 11장에서는 ‘하느님의 벗’(야고보서 3장 23절)이라고 불리게 된 ‘믿음의 조상’(로마서 4장 17절) 아브라함을 소개합니다. 창세기 12장에 의하면,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라는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전해줍니다.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그의 ‘순종과 실천’은 장차 이집트 탈출과 광야유랑생활 40년을 거쳐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의 예고편이며, 지상 순례를 마친 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표본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루카복음에 의하면, 하느님 나라가 언제 도래(到來)할지 모르니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종말이 언제 닥칠지 모르니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을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교회에서는 종말이 되면 예수님이 ‘인자(=사람의 아들)’로서 내림하시어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신다고 본 까닭에 하느님 나라를 ‘인자(=사람의 아들)’로 대치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준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비록 예수님이 당장 내림(來臨)하시지 않고 다소 지체하시더라도(루카복음 12장 45절) 교회지도자들은 교우들을 잘 돌보아야만 그분이 갑자기 내림하시는 날에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만일 교회지도자들이 종말이 지연된다는 핑계로 교우들을 저버린다면 종말심판 때 멸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부 성베네딕도는 『규칙서』 ‘제73장. 이 규칙서 안에는 모든 의덕의 준수를 위한 규율이 다 규정되어 있지 않음에 대하여’에서 “하늘의 고향을 향해 빨리 달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보잘 것 없는 초보자의 규칙을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 지켜라.”고 독려하셨습니다.

“복사판 인생, 그건 모처럼 태어난 보람을 스스로 내동댕이치는 것!”이라고 김열규 교수는 그의 저서 『꿈에들 잊힐리야』에서 말합니다. 이미 난 길을 가기만 하면 그만인 길가기, 그게 사람의 삶의 길가기이라면, 그렇게만 인생길을 밝아 나가고 있다면, 삶은 문득 기성품이 되고 맙니다.

얼마 전에 김열규 교수의 『공부』라는 책을 읽다가 “시력은 잃어도 학력은 드높아진 그녀”라는 제목의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줄거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생이란 워낙 장애물 경주 같은 것, 앞을 가로막는 장애를 뛰어넘으면서 누구나 삶을 이끌어나갑니다. 그런데 장애물은 크게 두 가지가 있게 마련입니다.

첫째는 삶의 도중에 주어지는 장애물입니다. 이 가운데는 우리 스스로 책임을 져야할 것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둘째는 운명, 환경 따위가 우리에게 덮어씌우는 장애물입니다. 우리 각자가 도저히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는 장애물이 여기에 속합니다.

“막 백일을 맞은 젖먹이는 눈앞에서 어른들이 딸랑이를 흔들어도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그녀 눈에는 전혀 초점이 잡혀있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아기가 ‘망막 색소 변성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녀는 이내 온전히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맹학교에 입학해서 12년을 다녔습니다. 초 ․ 중 ․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셈이었습니다. 그녀는 맹학교를 다니면서 죽자고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어머니가 그녀를 거들었습니다. 참고서를 스캔해서 점자로 고쳐준 것은 어머니의 지극한 애정이요, 정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딸이 고3이 되자 문제집을 낱낱이 읽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딸의 눈이 되어주자’는 일념으로 어머니는 눈먼 딸의 공부를 도왔습니다.

그녀는 공부 외에는 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눈이 보이는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한 그녀의 결의는, 또 각오는 불꽃이 되어 타올랐습니다. 점자를 짚는 그녀의 손끝은 집요하고도 날렵했습니다. 점자를 읽는, 그녀의 손가락 공부는 지칠 줄을 몰랐습니다.

대학을 마치고는 미국의 로스쿨에 입학하고자 했습니다. 국내의 4년제 대학을 전공학점 4.0 만점으로 졸업한, 그 무서운 저력이 꿈을 키운 것입니다. 국내 대학에 다니면서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교환 학생으로 뽑혔을 당시 특수교육학에서 4.5점 만점에 4.06점을 따낸 것도 그녀의 사기를 돋우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의 로스쿨 합격을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800장이 넘는 법학 영어 사전을 스캐너로 스캔했습니다. 그리고 스캔한 사전을 모두 1600장의 파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김현아씨는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으로 일컬어지는 점자 정보단말기를 통해서 사전 한 권을 통째로 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국내에는 단 한 명뿐인 시각장애인 응시자인 그녀를 위해 미국에서 공수되어온 점자시험지로 그녀의 앞길이 환히 틔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그녀는 미네소타 대학교의 로스쿨에 합격한 것입니다.

눈으로 앞을 보지 못하기에 오히려 더 한층 밝고 넓게 앞길을 열어나간 김현아씨의 점자공부, 책도 글도 직접 읽지 못하고 오직 점자에 매달린, 그 공부의 보람은 우리 누구나의 환히 뜨인 눈을 부끄럽게 합니다. 2010년 1월 15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는 2010년 현재 25세로 울산광역시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앞이 전혀 안 보이는 길을 걷고 또 걸어서 찬란한 최종 목적지에 안착한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스스로 정한 최고의 상아탑에 마침내 올라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옛 조상들은 믿고 바라던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주님의 제대를 중심으로 함께 모인 우리들도 그분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안고 선조들의 믿음을 본받아 고난을 참아 받으며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 있는 종들”이 되고자 노력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