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4주일 강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들어가면서

이탈리아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들머리 오른편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있습니다. 이제 막 운명한 나자렛 예수님의 시신(屍身)이 십자가상에서 내려져 성모마리아의 품에 안긴 모습입니다. 그 조각품에 관해서, 그 조각품의 완성도 높은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전해지는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 피에타 상을 감상하면서 “마지막 베일”을 벗겨내지 않았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 마지막 베일마저 벗겨 냈더라면 그 조각품은 곧바로 승천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보게도 됩니다. 그 작품의 예술성에 대한 극찬이겠습니다.

하여튼, 그 조각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 중에는, 아마도 어느 원로 조각가 중에 누군가의 작품이려니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본 즉 실상은 26세의 젊은 조각가의 작품이라는 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궁금하여, 어떻게 이렇듯이 완성도가 높은 훌륭한 조각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장본인인 미켈란젤로의 응답인즉, “그 조각품은 이미 그 바위덩어리 안에 있던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 바위덩어리로부터 이 조각품을 이끌어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불필요한 조각을 때어냈다는 것입니다.

들어와서

복음: 루카10,1-12.17-20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의 파견과 소명을 수행하시고 기뻐하며 돌아온 일흔두 제자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 설교의 주제는 “하느님의 나라”인데, 그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 자신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하느님이 다가오셨다”는 것이요,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로 간다는 뜻입니다.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사람이 취할 태도는 회개와 믿음입니다. 회개는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이요, 믿음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기쁜 소식을 수락하는 신앙입니다.

파견된 제자들이 선포하는 기쁜 소식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으로 드러난 선포의 내용과 일치하였듯이, 오늘 우리의 삶도, 말과 태도의 선포도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로서, 주님에 앞서 가게 된 자로서, 주님의 말씀대로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라는 기쁜 소식을 거듭 새롭게 선포하는 삶이고 싶습니다.

제1독서: 이사야66,10-14ㄷ

오늘의 제1독서는 벅찬 해방의 꿈에서 깨어난 귀향민들, 유배후의 예루살렘의 역사적인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일어서야만 했던 야훼의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지는 기쁜 소식으로 용기를 일깨우는 제3 이사야서의 한 부분입니다.

오늘 독서 말씀 중에서도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이를 보고 너희 마음이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는 구절에 마음이 가 닿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렇게 희망하고 싶은 내적인 바람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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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복판 여기저기

           준설선(浚渫船)과 포크레인이

           무법자들처럼 힘을 과시하여

           굉음을 발하고

           철교와 인도교 위를

           차량들이 꼬리를 물어

           -황금의 우상을 쫓는 무리들과

           -새 모세를 찾는 무리들을 싣고

           미친 듯이 달린다.

           ----- <중략> -----

           여위어서 찰싹이지도 못하는

           절망의 흐름 위에

           그 옛날 출렁이고 넘치던

           추억의 강을 그리며

           ----- <하략> -----

           (具常, ｢그리스도 폴의 江 15｣ 중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가슴으로 존재의 숨결이 되살아나게 하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상봉(相逢)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위해 사랑으로 혼과 얼을 다하는 투신의 삶은 참으로 존귀합니다. 진정함과 정성스러움으로 인연된 만남은 생명의 존엄함이 피어나게 하는 길입니다. 때때로 가슴 에이는 아픔을 피해갈 수 없다고 할지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겨 극진한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헌신은 부활의 여정입니다.

           오늘 마주하는 이 강은

           어제의 그 강이 아니다.

           내일 맞이할 강은

           오늘의 이 강이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 강과

           새 사람을 만나면서

           옛 강과 옛 사람을 만나는

           착각을 한다.

           (具常, ｢그리스도 폴의 江 24｣)

제2독서: 갈라티아서 6,14-18

오늘 두 번째 독서인 갈라티아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몸에 ‘예수님의 낙인’, ‘예수님의 인장’이 찍혀있다고 말합니다. ‘아가서’에 있는 “인장처럼 나를 당신의 가슴에, 인장처럼 나를 당신의 팔에 지니셔요.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정열은 저승처럼 억센 것.”(아가서8,6)이란 구절이 생각납니다.

실천적인 유다인이었다가 회심하여 열정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일생을 투신한 사도 바오로다운 표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충절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티아 2장 19ㄷ-20ㄱ절)라는 고백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이기에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가 말하는 ‘십자가’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건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떤 심리적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골고타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또한 그 사건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된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원받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힘(1코린1,18)과 지혜(1코린1,24)이기 때문에 바오로는 인간적인 성취 대신 십자가를 자랑의 근거로 선택한 삶입니다. 바로 그것은 ‘새 창조’의 길인 것입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라고 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 ‘새로운 창조란’ ‘새로운 피조물’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지칭합니다. 지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으며,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입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에게 속하며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 그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나가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무엇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생명 길의 첫 순간부터 하느님으로부터 선사 받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존재의 집, 존재의 자리에 선포되는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라는 말씀은 서로 사랑의 선물입니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이를 보고 너희 마음이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는 말씀은 홀로와 더불어의 희망입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이 오늘 스스로의 신앙이게 하고픈 바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 땅에서, ‘새로운 창조’로, ‘새로운 피조물’로 산다는 것은 그 창조의 원형이 드러나도록 불필요한 조각을 때어내는 작업입니다. 그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상 여정입니다. 평화를 빕니다.//庚寅年 夏節 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