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2010년 6월 6일-다)

  오늘날 모든 것이 편하고 풍족한 것 같지만 정작 우리가 날마다 숨 쉬는 공기와 먹고 마시는 먹거리들이 온통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마도 바쁜 현대 사회와 이기적인 문명이 만들어낸 참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맑은 공기를 공해로 찌들게 하였고, 먹는 물을 심각하게 오염시켰으며, 음식 역시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과연 몇 개나 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기본이 무너진 먹거리들은 발달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첨가물들과 인스턴트 식품들로 대표되어 왔습니다. 이로 인해서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성인병이라든지 암, 혹은 수많은 질병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즈음 청정공기, 생수, 그리고 비록 가격은 비싸더라도 무공해 먹거리를 더 선호하는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물과 음식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 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한 음식을 먹고 맑은 공기와 청정한 물을 먹는다고 하여도 그것이 곧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입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 손수 당신의 몸과 피를 아무런 조건 없이 내어 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오늘 복음의 말씀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함께 보고자 합니다.

1.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루카 9,12).

  예수님께서 12제자들을 파견하시자, 그들은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병자들을 치유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렇듯 바쁜 사도직에서 그들이 돌아오자 주님은 그들을 따로 데리고 벳사이다라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고 합니다. 이때 수많은 군중이 그분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분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날이 저물자 12제자가 인간적인 걱정을 하게 되었고 결국 주님에게 군중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로 황량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보듯이 비록 제자들은 이 황량한 곳에 오기 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며 기적을 일으키고 병자들을 치유해 주었지만 정작 그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님을 믿고 의지하기 보다는 인간적인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황량한 곳! 그곳은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아무 쓸모없는 장소일수 있지만 하느님의 시각에서는 또 다른 영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외딴 곳, 황량한 곳, 삭막한 곳, 그곳은 바로 인간적으로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거짓 안정과 같은 모든 허상들이 적나라하게 벗겨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즉 그곳은 인간 실존에 직면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며 동시에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옛날 사막의 수도승들은 세상을 떠나 자발적으로 사막이나 광야, 외딴 곳, 혹은 황량한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신앙생활을 깊이 하기 위해서는 일상 안에서 자주 이러한 곳을 찾아 나섬에 주저해서도 안 됩니다.

2.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 밖에 없습니다”(루카 9,13).

  수많은 군중들에게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너무나 초라하기 까지 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 조그마한 음식을 가지고 거기에 있던 수많은 군중을 먹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때때로 이러한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요구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삶의 자세를 갖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의 예로 빈 컵에 물이 반이 있을 경우에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180도 달라집니다. 물이 반 밖에 없잖아! 라는 부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진 자에게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시작부터 절망과 포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것은 오늘 복음속의 제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물이 반이나 남아 있네! 라고 보는 삶의 자세를 가진 자에게는 감사함과 희망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바로 이러한 신앙의 자세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음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절망 속에서도 기쁨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전 세계 교회가 봉헌하고 있는 미사에서도 인간적으로 볼 때 제병과 포도주는 너무나 미소하고 초라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고백하게 됩니다.

3.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루카 9,17).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셨다고 말합니다. 공관 복음은 한결같이 그 숫자가 여자와 어린이들을 제외하고 장정만도 무려 5천명 가량이 되었다고 보고하고 있으니, 분명 그 당시 그곳에 모였던 군중은 5천명을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이 전해 주고자 하는 중요한 사실은 그 숫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많은 사람을 먹이셨듯이, 그분은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 백성들을 먹이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미소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던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후에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자,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은 모으니 12 광주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 보면, 주님께서는 최후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교회가 빵과 포도주에 대해 반복해 사용하는 성찬 예식의 핵심적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유언으로 인해 교회는 초기 교회부터 오늘날까지 성찬례와 말씀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습니다. 빵과 포도주는 미약하지만 미사 때 성변화를 통해 그것은 이제 주님의 몸과 피가 되고,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갈증과 배고픔을 채워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음식, 좋은 음료를 먹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음료와 참된 음식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매일 먹고 마셔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마침내 영원한 생명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더 자주 매일 미사의 초대에 기꺼이 참여함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부족한 우리들을 위해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성체와 성혈 안에서 그분과 깊이 일치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미사 중에 주님의 자비를 청합시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