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  이 사바 신부님

INTRO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로서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사건을 기념하고 경축합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함으로써 확고한 믿음에 도달하기까지는 좌절과 의혹 그리고 불안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자 제자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제자들이 진정한 사도로 다시 태어나는 전환점이 된 것이고 그래서 오늘은 교회의 창립일이 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머무시는 성령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고 당신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시켜주시기를 기도드리며 이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봉헌하기 위하여 우리 잘못을 반성합시다.

HOMILIA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로서 오순절에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신 사건을 기념하고 경축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주님 승천 대축일을 지내고 난 다음 계속 미사 독서와 복음을 통해 성령께 대한 말씀을 들어왔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복음서를 포함해서 성서 안에 성령께 대한 언급이 꽤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막상 성령이 누구신지를 생각해보면 좀 막연하거나 그분이 누구신지 보다는 그 은사나 열매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성령을 이해하는 첫 걸음은 아마 전례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로 시작된 부활시기는 오늘로써 마무리되고 내일부터는 연중시기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예수 부활 사건의 마무리요 완성이 바로 이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루어짐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마지막 적대자인 죽음을 이기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지만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의 모습은 결코 영광스럽지도 승리의 기쁨에 차있지도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왕이 되신 스승 옆에서 영화를 누릴 줄 알았던 제자들은 스승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고 자신들에게도 그 불똥이 튈까 두려워서 집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승리를 알아차리고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패잔병 신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그러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부터 7주간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체험한 시간, 스승의 부활 사건의 의미를 차츰 깨닫고 동참하면서 확신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성령 강림으로 제자들은 더 이상 패잔병이 아닌 승리한 군사요 스승의 부활에 온전히 동참한 사도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부 오른편에 앉으셨지만 이제 성령을 모신 사도들이 주님이 하신 일을 계속하면서 온 세상에 전하게 되었기에 오늘이 교회의 창립일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이해하는 두 번째 단초는 복음서에 나오는 성령의 다른 이름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4,16과 15,7에서 예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시며 그분을 빠라끌리토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협조자 혹은 위로자라고 번역하지만 아직도 정확한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빠라끌리토란 법정에서 변호하는 역할을 맡은 증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재판관이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사탄은 우리를 고발하는 자로 나타나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변호해주시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빠라끌리또를 꼭 법정 용어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옆에 계시며 우리를 두둔하고 변호해주시는 분이기에 위로자나 협조자의 뜻을 다 포함한다고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린토 전서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은사나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열매는 이렇게 우리의 변호자요 협조자이신 성령의 활동일 것입니다.

  그 다음 성령의 또 다른 이름은 진리의 영입니다. 요한복음사가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과 함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라고 하시는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서 볼 수 있듯이 진리는 바로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진리요, 그분 자체가 곧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의 영은 그리스도께 속한 영이고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가르쳐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 16,13에서 “진리의 영, 그분이 오시면 그대들을 모든 진리 안에 인도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십니다.

  결국 그 진리란 당신 아드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하시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지일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아무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하셨듯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누구시고 무엇을 하신 분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그런 주님을 가르쳐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사랑의 불을 지피며 그분께 응답하도록 해주시는 분입니다.

  성령께 대한 다른 성서 말씀들도 많이 있지만 성령 강림 사건을 묘사한 사도행전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루가는 오늘 제1독서에서 초대교회가 체험한 성령의 모습을 세찬 바람, 불길 같은 혀, 언어의 상통, 그리고 신기함으로 표현합니다. 귀에 들리는 바람 소리, 눈에 보이는 불길의 모습으로 묘사된 성령의 모습은 틀림없이 우리의 지각과 연관된 활동을 보여주며 성서에서 불의 상징은 정화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세찬 바람과 불길은 모든 것을 태우고 날려버리게 할 수 있습니다. 창조 때부터 나타난 인간의 불순종, 죄악, 불신앙 등 잘못된 모든 것이 이제는 불태워지며 새롭게 창조된다는 암시가 그 이면에 깔려있습니다.

  우리는 그 새 창조가 어떤 것인지 제자들의 변한 모습에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불타올라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의 모든 언어로, 세상 끝까지 목청껏 선포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도들의 변화, 그리고 교회의 탄생은 안으로는 수도승 밖으로는 선교사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선교든 수도승 생활이든 결국 자기 정화를 전제로 하고 성령의 영감을 통한 주님의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변호인이고 교사이며 전구자이고 우리의 성화의 원동력이신 성령은 모든 교회생활 특히 우리 수도생활의 원천이며 활력이십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이나 수도생활을 하며 느끼는 어려움은 우리가 하는 일의 양이나 질 혹은 지위나 권한의 한계 같은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삶과 하는 일의 의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할 때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한 수도생활 행복한 신앙생활을 원한다면 성령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의미를 새겨주시기를, 주님께 대한 사랑의 불씨를 지펴주시기를, 그리고 나의 내면을 정화시키고 성화시켜주시기를 빌며 내 삶과 공동체의 주도권을 성령께 넘겨드리도록 노력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요 수도생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