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착한 목자 주일-성소주일) 강론

① 사도 13,14-43-52 ② 묵시 7,9.14ㄴ-17 ㉥ 요한 10,27-30

INTRO

  부활 제4주일을 맞이하는 오늘은 특별히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 해서,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성소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이 미사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목소리에 옳게 답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또한 지금 이 자리에는 유치부부터 고등학생까지 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앉아있는데, 조금 소란스럽더라도 수사님들과 이 미사에 참여한 다른 어른 신자분들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 여러분과 청소년 여러분들은 이 미사가 본당미사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조용히 미사에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잠시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HOMILIA

  오늘은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입니다. 하지만 방금 들은 복음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은 성소주일이기에 앞서 착한 목자 주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는 그분 양떼인 우리가 양우리 바깥에 있는 이들을 불러 모을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교회는 매년 요한복음 10장의 착한 목자 내용을 선포하는 부활 제4주일을 착한 목자 주일이자 성소주일로 지정한 듯합니다. 덕분에 일종의 성소주일 ‘행사’차 수도원 미사를 참여하기 위해 온 초중고 학생들로 인해, 오랜만에 수도원이 북적거리고 활기를 띠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그분의 울타리를 위한 봉사라는 차원에서 성소를 되돌아보는 오늘의 복음 말씀은/ 다른 부활 주일 복음 말씀과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것 같고, 부활이라는 영광과 간접적으로라도 관련이 없는 것 같은 말씀뿐입니다. 도대체 오늘의 복음은 왜 이런 엉뚱한 말씀을 갑작스럽게 선포하고 있는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예수님을 동산지기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마리아!”하는 단 한 마디 부르심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게 됩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부활한 사람은 “썩을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부활”하고,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약한 것으로 심어지지만 강한 것으로 부활”하며, “자연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부활”(1코린 15,42-44)하여 그 모습이 손상되지 않고(impassibilitas), 빛나며(claritas), 빠르고(agilitas), 예민하다(subtilitas)고 가르칩니다. 이런 어려운 말은 둘째로 치더라도 분명 부활하신 예수님 자체는 돌아가시기 전의 바로 그 예수님이건만,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분이 평소에 나만을 부르던 바로 그 ‘목소리’를 통해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듣습니다”라는 말씀을 듣는 예수님의 ‘양들’은 그저 의미 없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매일, 매순간 우리를 불러주시지만, 매번 특별하고,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바로 그런 목소리로 우리를 불러주시고, 우리를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분의 목소리는 단지 ‘음성’이라는 측면의 ‘목소리’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빵을 들고 찬양하신 다음 떼어 나누신 예수님만의 독특한 모습에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면 고기가 잡힐 거라는 말씀을 건네시고, 평소 모습대로 빵과 생선을 먹는 모습에서 사도 요한은 베드로에게 그분을 ‘주님’이라고 말하고, 다른 여섯 제자들은 이미 그분이 예수님인 줄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누구인지 묻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아듣는 예수님의 ‘목소리’라는 것은, ‘음성’이라는 측면의 목소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평소에 예수님과 관련하여 보고 듣고 하던 모든 것들이 우리 영혼에 말씀을 건네시던 예수님의 목소리였던 겁니다.

  이처럼 부활주일의 흐름과 동떨어져 엉뚱하게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 복음 말씀은, 평상시 주님의 말씀과 행동이 바로 부활하시어 영광스럽게 되신 분께서 우리 영혼에 하나의 ‘목소리’로 새겨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평소에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그분 목소리를 잘 알아듣기 위해 항상 깨어서 세상만사, 그리고 세상만물에 귀를 열어두고 있어야 합니다. 이는 결국 예수님만의 말씀을 알아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하신 그분의 말씀을 따라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목자이신 예수님은 오늘의 제2독서에서처럼 우리와 같은 양, 어린양이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맏물, 우리의 첫째가는 형제로서 우리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오히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또 다른 어린양이 될 희망도 가질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만사와 세상만물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임으로써 또 다른 하느님의 목소리가 되어 그분 말씀을 세상에 선포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착한 목자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또한 우리 자신이 그분 양떼를 위한 봉사자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성소라는 것을 단지 큰 테두리에서 수도성도로 뭉뚱그려보기보다는 내 자신이 가진 고유한 성소, 고유한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도 오늘 수도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왔겠지만, 중요한 것은 일상 삶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이 항상 나를 이끌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매 순간 깨어 그분 말씀을 따르고, 그 말씀을 이웃에게 전파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큰 성소가 아닌가 합니다.

  이 어렵고 지루하게 수사님들을 대상으로 한 강론을 인내로 들어주신 어린이들과 청소년 여러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미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