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의 신앙인의 모습

루카 4,1-13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매월 한 번씩 월피정을 하는데, 제가 신학교 1학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대구 팔공산자락에 위치한 한티 영성관에서 월피정을 하는 그 날에 광야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광야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기도 전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떠나기에 앞서 기도서인 성무일도, 김밥과 물통, 약간의 간식을 가방 안에 챙기고, 비상시를 대비하여 현금 5백원도 주어졌습니다. 허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거나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여 무작정 한티 고개 도로를 따라 내려왔지만 목적지가 없었으므로 산행을 하여 산봉우리를 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계속 걷다보니 배는 점점 고파오고 날씨는 조금씩 무덥기 시작하여 그늘진 곳에서 낮기도를 하고 도시락으로 싸 온 김밥과 간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하였습니다. 또다시 산봉우리를 타고 고개를 올라가는데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땀이 차고 목마름을 느껴 시원한 음료수나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산봉우리 하나를 넘었더니 휴게소 하나가 가까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휴게소는 고개 정상에 위치하여 산행인과 그 곳을 지나치는 여행자들을 위하여 마련한 장소입니다. 그 때 비상시에 쓸 5백원이 주머니 안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아이스크림 하나에 5백원이었으므로 사 먹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였지만 영성관에서 출발할 때 내걸었던 조건들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수중에 가지고 있던 5백원도 비상시에 쓰는 돈이었기에 낭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휴게소 앞에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 마음 안에는 그냥 눈 딱 감고 휴게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라는 유혹이 가득찼습니다. 결국 고개를 돌려 바로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긴 하였어도 안타까운 탄성만이 절로 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계속된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는 것이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사실 이 광야체험을 통하여 특별하게 하느님 체험을 하지 못하였어도 홀로 걸어가고 있음에도 옆에 어느 누군가가 함께 하고 있다는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음의 조그만 유혹을 물리치려는 제 모습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광야는 인적이 없고 조용한 장소였기에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사십일 동안 기도하고 단식하며 하느님과 일치를 나누셨습니다. 다만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굶주리신 상태였습니다. 악마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분의 제일 약한 부분을 이용하여 유혹합니다. 악마는 곧 허기진 예수님께 빵의 유혹을 시작으로 세상에서의 권력, 자기 과신이라는 이 세 가지 유혹거리들을 내세우며 그분을 유혹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성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것들을 단호하게 물리치시고 악마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십니다. 곧 순명으로 모든 것을 견디어 내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애썼던 악마의 갖은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맙니다. 결국 광야에서 어느 것도 얻지 못한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예수님께로부터 떠나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있어서의 광야는 기도와 쉼을 위해 하느님과 일치하는 한적한 장소이면서도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지만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 유혹을 물리치신 승리의 장소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는 성경에서 종종 등장합니다. 그 곳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정처없이 떠돌았던 장소, 엘리야가 하느님을 만났던 장소, 세례자 요한이 회개할 것을 외쳤던 장소 등 여러 곳에서 등장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의 광야는 메마른 땅에서 내면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정화와 쇄신의 장소, 조용하게 기도하기 위한 쉼터나 외딴 장소,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며 그분을 향해 걸어가는 길 등 갖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광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주어질 것입니다.

  먼저 광야는 침묵과 말씀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고요한 상태에 놓여 있기에 경청할 수 있는 최적합한 장소로서 말씀이 살아있는 장소입니다. 우리의 내면도 그러합니다. 만약 우리의 내면이 어수선하거나 소란한 곳이라면 아직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상태입니다. 주님은 잠잠하고 조용한 정적인 상태에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우리 안에 말씀의 씨앗이 돋아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준비와 자세가 생겨납니다.

  다음으로 광야는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장소입니다. 은수자들과 수도자들이 고행의 장소로 손꼽은 곳은 바로 광야의 한복판인 사막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끊임없이 기도와 자기 수행을 하며 하느님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순명으로 오롯이 그분만을 따르고 증거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개선해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원한 삶을 추구하였던 우리 자신에게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느님과 일치하였을 때 자기 자신을 쇄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고 더불어 나와 내 형제자매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광야는 나눔과 희망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광야에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인들에게 만나를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한적한 장소에서 당신의 말씀을 들으러 온 5천명에게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곧 그분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이 삶을 본받아 우리 신앙인들도 자신이 지닌 것을 타인에게 나누어 주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꼭 쥐고 있기 것보다는 그것을 베풂으로써 더 큰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고 그 신앙의 빛은 더욱 밝게 비춰질 것입니다.

  사순 시기는 하느님께 더욱 매진하고 정진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우리의 삶의 터전입니다. 바로 그 터전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매순간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히 임하였을 때 우리의 내면은 점점 하느님과 일치하게 되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