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일

제1독서 : 이사 6,1-2a.3-8 제2독서 : 1코린 15,1-11 복음 : 루카 5,1-11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승 서원의 핵심은 흔히 제대 위 서원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제대 위에 나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단 한 번 영원한 십자가상 희생 제사에 동참하는 것이 바로 우리 서원의 핵심인 것입니다. 하지만 신학이야 어쨌든, 여기 앉아계신 수사님들께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였다거나 그 부르심에 응답한다고 느낀 순간은 모두 다 다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사님들 대부분은 제대 위에서 서원장에 서명을 하고 그 서원장을 봉헌하는 때보다 서원장을 읽을 때, 혹은 수쉬페를 노래할 때, 아니면 평화의 인사를 할 때가 더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을 겁니다.

  저의 경우, 종신서원 혹은 첫서원 미사가 그리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예식 자체에 너무 긴장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미 별다른 감흥 없이 사는 데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어떠한 감정의 기복보다는 그저 끝까지 살아가는 데에 목적을 두어서인지 평소에도 어떤 감정에 휘둘리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을 갖고는 있는데, 그러던 것이 딱 한 번 무너져 내린 적이 있습니다. 바로 첫서원 때도 종신서원 때도 아닌 청원착복을 하던 때입니다. 지금 여기 수도생활 체험학교에 참석한 젊은이들이 수도복을 단 30분의 예식을 통해 입게 되었지만, 저의 경우 1년을 기다려 처음 수도복을 받았을 때의 감정은 지금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하다가 기쁘기도 하고, 반대로 후회와 슬픔이 밀려오기도 하면서 나중에는 내 자신이 이런 옷을 입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뻐해야 할 날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오히려 고민을 하던 끝에, 하느님께서는 바로 나를 위하여 마련해둔 이 수도복이 나에게 꼭 맞는 옷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와 복음은 예언자 이사야와 시몬 베드로의 소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사야는 저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홀로 앉아계신 하느님 앞에서, 베드로는 나와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며 더욱 내밀한 곳으로 나를 이끄시는 예수님 곁에서 각자의 소명을 받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을 처음 체험한 이들 모두는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먼저 지금까지의 나 자신,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바로 나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이사 6,5). “주님,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루카 5,8).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만큼이나 모두가 다 다른 하느님의 소명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엄위하심을 체험했든지, 아니면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체험했든지간에 처음에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하느님의 부르심에 합당치 못하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겸손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채찍질을 가하기도 하는데, 이사야와 시몬 베드로에게 자격을 부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부족한 점들을 깨우쳐 주시면서, 동시에 각자 모두 다른 방식으로 그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라고 고백했던 이사야에게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노래하는 사랍, 즉 세라핌을 통하여 타는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대시면서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고 하십니다. 또한 잡은 물고기의 양으로 질려있는 베드로에게는 예수께서 “겁내지 마시오.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을 것입니다”는 따뜻한 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소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써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시면서도, 우리가 그 부족함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도록, 넘치도록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3박 4일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수도생활 체험학교가 끝나게 됩니다. 이 수도생활 체험학교가 가급적 이벤트와 같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그래도 하나의 행사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수도생활을 맛보기로 체험하는 데서 오는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내일도 수도생활을 계속 이어나갑니다. 이 자리에 있는 수사님들께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수도생활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각자 고유한 삶을 주저없이 살아가고 계시듯이, 또한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고 있는 젊은이 여러분께서도 몸을 사리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꿋꿋하게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하느님에 의해 입술이 정화된 예언자 이사야는 말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또한 예수님의 부르심을 겁냈던 베드로는 “겁내지 마시오. 이제부터는 사람을 낚을 것입니다”는 말씀에 ‘배를 끌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고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우리지만,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힘입도록 합시다.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