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대축일 낮미사 (2009년)

중학교 1학년 때 경기도 미리내 성지에서 서울 대교구 예비 성소자 피정에 참석했습니다. ‘미리내’라는 뜻은 ‘은하수’라는 뜻입니다. 별의 바다가 흐르는 광경을 체험했습니다. 참으로 경이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조그만 아이가 처음으로 올려다보는 우주의 장엄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빛의 흐름, 빛의 강물, 도도히 흐르는 별들의 강물이었습니다. 아직도 제 머리 속에는 그 광경이 생생하기만 합니다.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에서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설명할 때 빅뱅(big bang)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빅뱅’이라는 것은 시간이 있기 전에 한 점에서 에너지와 물질이 대폭발해서 우주가 탄생하였다는 이론입니다. 현재도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강론에서 우주 탄생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의미에서 우리 신앙의 빅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지금 우리 모두는 빅뱅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신 빛의 대폭발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을 자신의 복음 처음에 하나의 장엄한 서사시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온 우주가 생겨난 근원인 이 빛이 바로 우리 모두의, 아니 우주 전체의, 존재하는 만물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이분이 바로 온 우주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오늘이 바로 빛의 탄생일입니다. 구유에 누워계신 이 아기가 바로 온 우주의 근원이신 빛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현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우리 개인 삶에서도 사회와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도 빛보다는 어둠이 뒤덮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건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하느님은 어둠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어둠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아무도 이 어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둠, 암흑은 무엇입니까? 간단히 얘기해서 빛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빛을 거부하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어둠과 암흑입니다. 빛은 어둠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단지 어둠이 빛을 거부하고 부정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이 빛을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지만, 세상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은 어둠이 빛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빛을 빛이라고 말도 못하고 온갖 술수를 써서 어둠을 빛이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한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하신 빛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자신을 드러낼 뿐입니다. 어둠에 쌓인 작은 외양간 구유 안에서, 양친과 목동들과 짐승들 사이에서 조용히 빛을 발할 뿐이십니다. 빛은 다만 빛날 뿐입니다. 빛은 따뜻할 뿐입니다. 빛은 밝고 투명할 뿐입니다. 빛은 어느 곳이든 도달할 뿐입니다. 이 빛은 어둠을 비난하지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둠은 빛을 발하는 그 빛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비난한다고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빛의 탄생일인 오늘 저는 삶의 역설을 말하고 싶습니다. 어둠이 있어야지만 빛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더하면 더 할수록 빛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빛이 존재하기 위하여 어둠이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지만 빛을 거부하는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더욱 갈망합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더 풍부히 내린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빛이신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이들,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는 하느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주셨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자녀는 바로 빛의 자녀들입니다. 온 우주를 만드셨고 당신 생명으로 우주를 지탱하고 계시는 참다운 빛을 갈망하는, 우리가 바로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분을 세상의 빛이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제 성탄 밤미사 때 기쁨과 감사가 넘쳤지만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느꼈습니다. 십자가의 그 처절한 고통 속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예수께서는 부르짖으셨습니다. 어둠이 온 땅을 덮을 때, 한 가냘픈 빛이 꺼져가고 있는 그 광경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빛은 어둠을 배척하지 않았지만, 어둠은 빛을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빛의 탄생을 경축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빛의 자녀로서 어둠 속에 존재하는 빛이 됩시다. 그러나 어둠을 저주하지 맙시다. 어둠을 비난하지 맙시다. 어둠을 비난하면 할수록 그 어둠은 점점 더 힘을 얻고 우리 자신들마저도 빛을 배척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어둠 속에 싸여 있다면, 이것을 통하여 내 자신을 무엇으로 체험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 어둠을 저주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을 통하여 어떻게 나는 내 자신을 빛으로서 체험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많은 영성가들은 깊은 어둠의 체험을 통해서 빛이신 주님께 나아간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둠이 우리 내면에 우리 외부에 더 짙을수록 빛은 더욱 강한 힘으로 우리 안에 우리 밖에 현존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빛으로 체험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어둠을 비난만 하고 있습니까? 아멘.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