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제1독서 : 스바 3,14-18a 제2독서 : 필리 4,4-7 복음 : 루카 3,10-18

INTRO

  오늘은 자선주일이자 기쁨주일입니다. 가장 작고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쁨 중에 맞이할 준비를 하며, 동시에 가장 작고 가난한 이들을 다시금 생각하는 날입니다. 아울러 오늘은 우리 수도원의 이석철 미카엘 수사님께서 만 95세 생신을 맞이하신 날입니다. 평생을 수도원에서 기쁨 가운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나눔 실천을 몸소 보여주신 미카엘 수사님이 앞으로도 기쁘고 건강하게 수도생활을 계속 해 나가시도록 미사 중에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잠시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HOMILIA

  군대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군인 신학생 피정이라는 것이 열리는데, 마침 첫 군인 신학생 피정이 부대 진지공사를 출발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직 일병이라는 계급, 소위 짬밥을 아직 얼마 먹지도 않던 때라 그 쟁쟁한 선임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휴가증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일이 꼬이는 바람에 부대가 진지공사를 다 떠나고 중대를 임시 폐쇄할 때까지도 휴가증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오후가 되고 어느덧 저녁이 되어서야 간신히 나오게 되었는데, 그 날의 그 기다림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혹시라도 저녁까지 안 나올 경우에는 진지공사장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어서 더욱 속이 타들어 가고, 실제로도 하루 종일 휴가증을 받기 위해 본부대로 왔다 갔다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날의 기다림 속에는 애절한 마음과 더불어 짜증은커녕, 간절한 바람과 이루어지리라는 믿음, 그리고 큰 기쁨이 저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미사에 참여하신 분들 가운데 그 누군가를, 혹은 그 어떤 것을 기다리며 큰 기쁨 중에 휩싸여 보낸 경험을 하신 분이 얼마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그래도 그러한 경험들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아쉽게도 요즘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그러한 경험을 쉽게 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세상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기다림이 없어지게도 되고, 사실 기다림을 못 참게도 됩니다. 예전의 기다림이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에 맞추어 나가서 마냥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설렘을 간직하고 있는 거였다면, 오늘날의 기다림은 약속시간이 오기도 전에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다가 어디냐는 문자를 보내고, 더 이상 못 참을 지경에 이르면 전화를 걸어, 오고 있는 중간 지점에서 만나려고 아예 약속 장소 자체를 변경시키기도 하는 그러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대림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즈음, 우리가 기다리는 분에 대한 진정한 기다림이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오늘 복음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길게는 수천 년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후손을 기다려 왔고, 짧게는 수백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자신들이 기다려온 사람이 아닌가 하고 섣불리 판단하기도 하는데,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다림이, 나아가 우리 모두의 기다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님을 깨우쳐 줍니다.

  그들의 기다림은 아무나 손쉽게 만나서 손쉽게 헤어지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마치 요한에게 그러했듯이 그냥 한 번 툭 찔러보는 그러한 만남을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들의 메시아 기다림, 우리의 기다림은 물과 같이 흘러 흘러 되는대로 아무나 능력 있다 싶은 이들을 툭 찔러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활력과 힘을 가지고서, 기다림 자체로 그러한 활력과 힘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기다림은 이내 우리의 마음 안에서 그 어떤 다른 잡생각이나 티를 없애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 곡식을 깨끗이 가려 밀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기다림은 자신이 기다리는 대상에 대한 생각 자체로 다른 어떠한 것들에 몰두할 여력이 없습니다. 오로지 기다리는 분만을 내 존재 전체에 새기고, 그밖에 다른 것들은 걸러내어 싹 태워 없애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여러모로 우리가 기다리는 분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복음, 즉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하는데, 바로 이 기다림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와 제2독서도 이렇게 우리가 기다리는 분에 대한 설명을 보충합니다. 제1독서는 이미 기다림 끝에 만남을 이룬 이의 기쁨이 표현됩니다.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신다.” 마찬가지로 제2독서는 곧 이룰 만남의 기대감으로 기쁨의 기다림을 준비할 것을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저 넋 놓고 기다리지 않고 기다림을 잘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속옷 두 벌 가진 사람과 음식을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세리와 군인에게는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사소하다고 생각하여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기다림의 기쁨에 눈 뜬 사람은 신랑을 기다리는 현명한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잘 준비된 기다림을 합니다. 마음속에서부터 기다리는 분에 대한 설렘이 힘이 되고 활력이 되어 다른 어떤 것에 눈을 돌리기보다 기다리는 분에 대한 생각이 자리를 차지해서, 결국에는 사소한 것에서부터도 그분을 잘 맞이하고 싶어집니다.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바로 2000년 전에 이미 오셨고, 앞으로 영광중에 다시 오실 분이며, 지금도 내 앞에서 내 마음의 문을 향해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한 번 잘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단지 앞당겨진 크리스마스, 혹은 연말연시의 시기로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오시는 그분을 기쁨 가운데 기다리며, 가장 작고 가장 가난한 이로 오시는 그분을 위하여 또한 작고 가난한 이들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분과의 만남을 잘 준비하고 있는지 곰곰이 자신의 삶을 잘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