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강론

(제1독서 : 창세 2,18-24 제2독서 : 히브 2,9-11 복음 : 마르 10,2-16)

미사 주례와 INTRO : 박 블라시오 신부

HOMILIA : 이 아타나시오 신부

오늘은 연중 제27주일입니다. 동시에 오늘은 군인주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오늘은 무엇보다도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이 더 와 닿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의 추석이라고 한다면, 수시로 집어먹던 송편과 약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탁에 어김없이 올라오던 잡채와 동네 어머니들과 부쳐 먹던 부침개 등 풍성한 먹거리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새해인사를 하거나 세뱃돈 받으러 다니는 설날 같지 않았기 때문에, 친척들 만난다고 시골에 가지 않고 대신에 동네에서 또래 아이들, 그리고 그 식구들과 함께 모여 놀면서 밤늦게까지 끊임없이 먹은 기억이 제일 많이 떠오릅니다. 80년대 중반, 한창 개발 중이던, 연탄공장이 들어선 동네에서의 모습인지라 저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이가 있으시고, 다른 지역에서 사시던 형제님들이라면 보다 정겨운 추석의 풍경이 그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온 식구들과 근처 이웃들과 함께 어느 한 집의 마당에 모여 같이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를 하며 밤을 보냈던 일들은 식구들 사이에, 그리고 이웃들 사이에 서로 정을 쌓아나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요즘의 추석 풍경에 대해 우리 선배 수사님께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대화가 있고, 서로 이해하고,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었던 그 추석의 풍경은 더 이상 그려지지가 않았습니다. 당장 주변의 가정을 둘러보더라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추석 특집 TV 프로그램과 한창 열기를 더해가는 야구, 드라마를 보는 부모의 모습,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문자질과 온라인 게임을 하는 자녀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부부는 부부 나름대로, 부모자식 사이는 부모자식 사이대로 휴일을 맞아 함께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기는 하지만,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자기 볼일을 보는 가정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세상이 살기 좋게 변했지만, 이처럼 가정은, 나아가 사람 관계는 자꾸만 해체되어만 갑니다. 이럴 때 가장 편리한 것은 방어벽을 쳐 놓은 채 서로를 배려해 주는 척 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소위 쿨함을 미덕으로 아는 요즈음 젊은 부부들의 경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그저 좋은 친구로 남기 위해서 이혼을 쉽게 할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이들은 분명 2000년 전의 바리사이들과 실제적으로는 다른 이유에서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실한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는 같은 이유에서 부부 사이의 혼인생활, 나아가 사람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께 한 질문은 비단 부부간 혼인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는 모든 인간관계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의 질문에는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큰 소리로 자기 공덕을 선전하는 바리사이들은 거짓된 모습, 포장된 모습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인간관계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국 찾아가야 할 하느님 나라, 태초의 에덴동산과 같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바로 그러한 상태에서 거짓된 모습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길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부부 사이의 관계에서처럼 수도원이라는 가정 안에서 모두 함께 살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형제라는 짝을 맺어주신 그 관계를 생각해 보시도록,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형제 수사님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공동체 안에는 남편과 아내의 외적인 모습과 마찬가지로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으며, 모든 일에서 주목을 받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소외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 소박맞고 버림받을 수도 있었던 아내라는 존재는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장기를 보호하는 갈빗대로 비유되듯이, 아내는 남편을 뒤에서부터 보호하는 존재입니다. 마찬가지로 공동체에서 겉보기에 약하고 소외된 것처럼 보이는 형제들은 공동체의 뒤에서 다른 형제들을 품에 안고서, 공동체를 위하여 늘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약한 존재인 아내와 동시에 어린이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십니다. 말썽부리고 귀찮은 존재이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을 예수님께서는 껴안으십니다. 이처럼 우리도 약하면서 상처받기 쉬운 우리 형제들을 뒤돌아서서 함께 껴안도록 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하나이신 분 안에서, 그리고 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한 형제를 이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