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빵

연중 시기 주일에는 가해에는 마태오, 나해에는 마르코, 다해에는 루카복음을 듣습니다. 올해는 2009년 나해입니다. 그래서 마르코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연중 17주일부터 이번 19주일까지 마르코복음이 아니라 요한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또 2주일 더, 그러니까 연중 21주일까지 요한복음을 더 듣게 됩니다. 연중 17주일부터 연중 21주일까지 나해는 모두 5번 주일에 요한복음을 듣도록 배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해 주일에는 마르코 복음을 읽도록 되어 있는데, 왜 연중 17주일부터 21주일 5번은 요한복음을 들을까요? 그것은 마르코복음의 길이가 마태오나 루카복음보다 짧아서 이렇게 요한복음을 넣는 것입니다. 모두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공관복음에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는 최후만찬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는 최후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는 이야기는 없고 대신 발을 씻어주시는 세족례 이야기만 나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연중 17주일부터 21주일까지 다섯 주일 동안 계속 성체성사 제정과 관련된 요한복음 6장 빵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 열왕기의 말씀을 살펴봅시다. 엘리야 예언자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야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해서 바알 예언자 450명을 죽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이세벨 여왕의 노여움을 사서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광야에서 엘리야 예언자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하느님께 외칩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제 목숨을 거둬주십시오.” 자포자기 하고 잠에 빠져들었는데, 주님의 천사가 두 번이나 나타나서 예언자에게 빵과 물을 줍니다. “갈 길이 멀다. 일어나 먹어라.” 그 음식으로 힘은 얻은 그는 40일을 밤낮으로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우리도 엘리야 예언자처럼 이 세상을 걸어가면서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삶의 최종 목표는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길을 가면서 우리는 뜻하지 않는 많은 사건을 겪게 됩니다. 육체적 시련, 정신적 시련,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쳐하기도 합니다. 이런 시련의 암흑이 우리에게 닥칠 때 어디에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어 우리 인생길을 걸어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 수도 선배들도... 독일 형제들의 수난에서 우리가 힘들 때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949년 8월부터 1954년 1월까지 만 4년 반 동안 강제 수용소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삶을 보냈습니다. 2000년에 귀천하신 지 에른스트 신부님의 증언이 있습니다.

“우리 일행이 옥사덕에 도착한 첫날 밤, 수도 가족들은 마당에 모여 참으로 오랜만에 저녁기도를 노래하였다. 우리의 메말랐던 마음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어 주는 느낌이었다. ‘오, 마리아, 이 탄식의 골짜기에서 우리를 도와주소서’라는 성모 찬가를 목청껏 외쳐 불렀다. 이 찬가는 수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살아갈 장소에서 처음으로 성모님께 외친 구원의 부르짖음이었다... 다음 날인 8월 7일은 주일이었다... 옥사덕에서 첫 미사 때에는... 안 아르눌포 부원장 신부가 미사 강론을 하였다. 신부님은 ‘어제 우리가 올라온 이 산이 고통과 궁핍과 귀양살이 속에서도 오히려 천상적 영광을 위한 산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요지의 강론을 하여 모든 수도 가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수녀님들 쪽에서는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덕원 수도원이 강제 폐쇄되고 옥사덕 수용소에서 노동과 착취에 시달릴 때에도 지 에른스트신부님을 지탱해준 것은 성체성사에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또한 평양 감옥에 갇혀있을 때 신 보니파시오 아빠스님과 홍 루치오 원장 신부님은 미사 경본도 없이 단지 기억에만 의지해서 성체도 성혈도 없이 ‘마른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부산 피난시절 부산 중앙 성당 2층 작은 다다미방에서도 우리 한국인 수도 형제들은 매일 아침에 거행한 미사를 중심으로 피난살이의 어려움을 이겨내셨습니다.

성체성사, 곧 미사에서 우리가 영하는 주님의 몸과 피가 우리의 힘이요 생명이요 용기요 희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입니다.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는 내 살입니다.” 엘리야가 하늘의 빵을 먹고 힘을 얻어 하느님이 계신 산으로 무사히 갔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 살과 당신 피를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아니 오늘 지금도 내어주고 계십니다.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황공할 따름입니다. 편안할 때나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우리 수도 삶을 우리의 신앙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몸과 피를 모시는 우리의 몸가짐과 우리의 마음가짐을 깊이 생각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모시고자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육신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과연 하느님 앞에 내가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몸은 온전히 그분께 향해있습니까? 또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서 성체를 나누어 줄 때, “아멘”이라고 또렷이 응답 합니까? 이 아멘은 ‘신앙의 확인’, 우리 ‘믿음의 확신’입니다. 다 알고 있지만, 우리 입으로 우리 혀로 발음을 할 때 이 신앙은 확증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체를 받을 때 우리는 가지런이 오른손으로 왼쪽을 바치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 손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많이 해서 더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성체를 받는 이때만은 우리 두 손은 왕을 모시는 옥좌이며 왕좌입니다. 우리의 왕좌에 우리의 임금이신 예수님을 정성스럽게 모시면 얼마나 거룩하겠습니까. 그리고 사제도 그리스도의 몸을 신자들에게 나누어줄 때 성의 없이 급하게 나눠줄 수 있습니까? 많은 본당에서 사제들이 신자들 수가 많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주님을 주님의 살을 신자들에게 성의 없이 나눠주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성체를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모두, 정성을 담아 주고 받으면 주님께서도 참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제가 미사 경문을 읽을 때 기도문 하나 하나를 마음에 새기면서 읽고 있습니까? 또 신자들은 사제의 말에 응답할 때 내가 응답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응답하고 있습니까? 기도문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바치면, 그 기도문의 내용이 내 살과 내 피가 됩니다. 우리는 그 기도문대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미사는 자동자판기가 아닙니다. 와서 돈을 넣으면 그냥 자동적으로 성체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의, 우리의 정성, 우리의 준비가 절대로 필요한 예식입니다. 미리 그날 독서 말씀을 묵상하고, 미사에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참례하고, 성가를 부를 때도 고운 목소리를 찬미 드립시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인 옛 어른들은 미사 때 헌금으로 낼 지폐를 정성스럽게 다림질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을 십자가 희생제물로 바치고, 우리가 봉헌한 빵과 포도주가 그분의 몸과 피로 변해서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경외로운 사건입니까? 우리는 사제 성화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제의 해 주보 성인이신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미사를 봉헌하셨다고 합니다. 곧, ‘오늘 내가 드리는 미사는 내가 드리는 마지막 미사이다.’

어려울 때, 힘들 때,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내릴 때, 예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붇돋아주시기 위해서 오늘도 당신 몸과 피를 우리에게 양식으로 내어주시고 계십니다. 이 미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참으로 정성스럽게 모시도록 우리 몸과 우리 몸을 그분께 온전히 내어드리도록 합시다. 이 미사 때 예수님은 당신 천사들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