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새벽 시간전례 초대송 후렴으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알렐루야, 주님의 얼이 우주에 충만했으니, 어서 와 조배드리세.” 저는 초대송을 노래하면서 제 자신 안에 그리고 온 우주 안에 주님의 영이, 주님의 바람이, 주님의 숨결이, 주님의 불이 충만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오늘까지 50일 동안 죽음에서 승리하신 주님의 부활을 경축했습니다. 성령강림 대축일 오늘은 부활의 완성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성령은 성서에서 “성령” 또는 “영”과 같이 직접적인 이름으로 표현되지만, 또한 간접적인 여러 가지 표상으로 더 많이 나타납니다. “바람, 불, 숨, 생기” 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시오”하고 말씀하시면서 “숨”을 불어넣어주셨다고 합니다. 또한 사도생전에서도 오순절 날 성령이 내려오실 때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불 같은 혀들이 제자들 각자에게 내려왔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표상인 숨, 바람, 불 등은 자연 현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바람, 불, 숨이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바람은 생명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합니다. 식물의 씨앗이 바람결을 타고 온 땅에 퍼집니다. 이 씨앗에서 식물이 온 땅을 덮고 동물들이 먹이로 삼습니다. 우리는 식물과 동물을 먹음으로써 생명을 살찌웁니다. 불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해줍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불로 조리하고 우리를 추위에서 보호해주고 우리의 어둠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숨은 우리의 생명 자체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우리에게 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흙의 먼지로 빚으시고 사람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시니, 아담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되었습니다(창세 2,7).

이처럼 성령은 바람과 불과 숨으로서 우리의 생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분이십니다. 9일 전에 아버지의 품으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생명 자체이신 아버지의 성령을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선물이십니다. 우리를 살리시는 생명의 선물이십니다.

우리는 한 주간 동안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또 많이 아파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어떤 방송매체에서는 ‘집단스트레스’를 우리 한국사람 모두가 받고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이든 아니면 타살이든, 분명한 것은 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생명의 호흡이 멈췄고 지금은 자신이 태어났던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죽음에서 저는 사람이 자연적인 호흡과 자연적인 음식으로 살지만, 이것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일 이런 것들로만 사람이 산다면 동물하고 무슨 차이점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자연적인 생명을 넘어서 초자연적인 생명을 힘입어 살아야 합니다. 이 초자연적인 생명력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형제 여러분, 우리가 무엇이 잘 났다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토록 큰 선물을 주십니까? 우리가 뭐가 그렇게 이쁘다고 이런 엄청난 생명을 주십니까? 우리가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숨을 쉬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성령이 오시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성령은 각자에게 내리시지만 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선, 곧 공익을 위해서 내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오시는 성령께서는 당신의 그 엄청난 생명력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사용하도록 원하십니다. 지난 5월10일 우리 수도 공동체는 주일 미사 후에 새로운 수도원 성당의 상량식을 거행했습니다. 상량 현판에는 이런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요,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도다” (1코린 3,16).

우리는 성령께서 거처하시는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아직 건축 중에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이 건물의 완공을 수행할 일꾼들입니다. 우리 각자는 과연 어떤 건축 재료를 가지고 생명력이 넘치는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오늘 생명의 성전을 짓는데 꼭 필요한 선물을 우리 각자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조금 전 부속가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가장 달콤한 안식이시여. 노고에 쉼이시며 더위를 식히시고 우는 이에게 위안이시여. 오 지극히 복되 빛이여, 당신 신도들의 마음속을 채우소서. 당신 능력 없이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아픈 이에게는 치유를, 우는 이에게는 기쁨을, 힘든 이들에게는 우리의 어깨를 내어주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 각자에게 내려주신 성령의 은사는 무엇일까요?

(성령 카드 선택, 복사들이 나누어준다). 한 해 동안 이 선물을 잘 간직하고 되새김해서, 하느님의 생명을 전파하고 생명을 건설하는 일꾼들이 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