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성야 미사 강론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제가 2001년에 서품을 받고 오늘 난생 처음으로 부활성야미사 주례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 왜관 본원에서는 최고 장상인 아빠스님께서 부활성야미사 주례를 하기 때문에 저같이 꼬마 신부들은 저 끝자리에 앉아서 공동집전을 하게 됩니다. 부활은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수도원에서 가장 어른이 이 미사를 집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서울 분원에서 성삼일 전례를 참례하면서 이렇게 가장 중요한 미사를 집전하도록 원장신부님께서 저에게 권유를 하셨을 때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전례를 감히 내가 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맡겨지니까, 다른 해보다 더 깊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성삼일 전례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주님 부활에 대해서도 더 많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핵심이 바로 이 부활 신앙이면서도 가장 믿기 어려운 것도 역시 부활신앙인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 지시고 돌아가셨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구원되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엄청난 은총의 선물 앞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기뻐하지만, 정작 눈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고, 나와 나의 일상을 바라보면, 구원은커녕 전쟁과 고통, 근심과 슬픔, 온갖 욕심과 조절하지 못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 기념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고통과 마음의 아픔을 잠시 잊게 하는 진통제 같은 것에 불과한 것일까요? 머리로는 영원한 생명을 찾으면서도 몸은 현세에 집착하고 있어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물론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의 대부분은 이미 오랜 신앙생활과 경륜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 계실 겁니다. 예수님의 삶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분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닮아 갈수록,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안에 이미 부활이 있음을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일상 안에서 매일 매일 주님을 선택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현실과 이상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미 나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그분과 같은 심정으로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굶주리고 있는 이들,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그분과 함께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나눌 때 시간도 욕심도 모두 잊어버리고 온전히 하나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지만...)

이렇듯 우리가 예수님의 삶에 깊이 일치되어 그분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이미 그분과 하나되어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부활을 기념하는 빛의 예식에서 체험했듯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시기 위해 빛이 되어 오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분께서 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셨듯이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빛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며 살아갈 때 오늘 우리가 지내는 부활 축제가 진정 나의 부활 축제가 됨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오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은 9개의 독서를 묵상하면서 세상창조와 에집트 탈출을 통한 구원, 왕정과 유배의 시기를 거치면서 우상숭배와 죄에 빠지고, 그리고 억압 속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 백성들 사이에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던 예수님의 출현과 그분의 부활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인생 속에 담겨있는 구세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창조는 나의 탄생, 홍해를 건너간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은 우리의 세례, 그러나 참 하느님을 알기까지 온갖 유혹에 빠지고 죄에 신음하는 광야에서의 나약한 우리의 모습,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어느 날 감당하기 힘든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과의 결정적인 만남, 유대의 지도자들처럼, 혹은 제자들처럼 그렇게 함께 있으면서도 불신과 배반의 연속으로 우리 시간이 수놓아졌지만, 그분의 더 큰 사랑은 우리를 부활케 하여 이제 진정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주님을 체험하며 그분과 일치하여 살게 되는 영적 여정을 보게 됩니다. 구세사는 바로 우리 인생여정과 딱 들어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각자는 이 영적 여정에서 지금 어디에 와 있나요?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에서 불평하며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얽매여 있나요?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셨나요? 아니면 죄에 눌려 그분을 두려워하고 있나요? 아니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나 율법학자처럼 메시아를 부인하고 일상의 관습에 얽매여 있나요?

진정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나를 넘어 그분과 하나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부활입니다. 오늘 복음의 빈무덤처럼 그렇게 내 안이 텅 비어 있을 때, 사람들은 우리 자신이 부활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오늘, 진정 그 축제가 나의 부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욕망과 그릇된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있는 내 마음을 비워내고 그 안에 주님의 사랑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볼 때 나는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들뜬 기쁨이 아니라 잔잔한 일상의 평화이며,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이자 나의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랑과 희생일 것입니다. 오늘의 축제가 나의 변화와 내일의 평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늘 온 마음과 온 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 안으로 뛰어 들도록 합시다.

알렐루야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