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강론

  사순 제2주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께서 당신의 천상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변모사화를 듣습니다. 우리가 전례 안에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축일을 따로 지내긴 하지만 미사 복음으로 자주 듣는 내용입니다. 이 사순시기의 초입에 예수님의 이런 영광스런 모습에 대해 듣는 것이 조금 뜻밖이기도 합니다만 우리는 언젠가 그 모습을 우리 눈으로 직접 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그 희망이 이루어지리라는 보증을 지금 우리가 거행하는 이 미사를 통해 얻게 됨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거룩한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봉헌하기 위하여 우리 잘못을 반성합시다.

  복음서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 예술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가 많이 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변모 사건입니다. 변모라는 표현 때문에 예수님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변장 사건으로 오해할 여지도 있지만 사실은 당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신 계시 사건입니다.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신’ 모습으로 변화되시고, 거기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구름 속에서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장엄하고도 너무 분명한 계시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이렇게 변하신 모습을, 아니 온전한 본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셨을까 하는 데는 조금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변하셨다는 천상적인 모습이나 율법을 의미하는 모세와 예언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께서 오시기로 예언되었던 메시아임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신앙고백은 사실 부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 제자들이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실제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리고 있었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복음사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이야기를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서 두 번째 부분, 그러니까 공생활을 시작하신 갈릴래아에서의 활동이 끝나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시작하시는 부분에 놓고 있습니다. 이 여행의 의미는 다름 아닌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으로의 여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당신이 십자가를 지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제자들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흩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준비되지 못한 제자들에게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앞으로 닥칠 일을 대비시키시기 위한 것이고 제자들에게 신앙의 확신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는 앞으로 닥칠 일도 이런 스승의 의도도 전혀 파악하지 못 합니다. 이런 모습과 분위기를 접한 베드로는 황홀함에 빠져서 그 산을 내려가서 여행을 시작하기보다는 그 자리에 초막 셋을 지어놓고 머물러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베드로의 이런 모습은 참으로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베드로의 모습 안에는 우리의 적나라한 내면이 담겨 있습니다. 힘들고 고통받는 것은 무조건 싫고, 하느님은 무슨 일이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니 내게는 그냥 좋은 일만 있게 해달라는 것이 우리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앞으로 다가올 십자가는 보지도 못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영광 안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모습과 신앙의 여정도 함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기도할 때나 평상시 생활할 때에 하느님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어떤 때는 메마르고 건조한 신앙 상태로 머물러 있곤 합니다. 지금의 내 생활이 행복하고 기쁘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마냥 힘들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때라도 나를 붙들어주는 것은 내가 그렇게 가깝게 느끼고 내 생활에 행복과 활기를 주시던 하느님 체험입니다. 그 체험이 있기에 영원한 생명과 행복에 대한 희망이 헛된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요, 그 체험이 있기에 지금 어렵고 힘들어도 내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런 행복한 기억과 체험 안에 초막이 아니라 그림 같은 집을 지어놓고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야 베드로 사도뿐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공통된 소망이겠지만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십자가에 이르는 마지막 여정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은 깨우쳐 줍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각각이듯이 그 십자가도 각각입니다. 그 십자가를 원망하고, 억지로라도 외면하려 한다면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그 십자가는 결국 자신의 몫입니다. 외면하기보다는, 원망하기보다는 그 십자가를 껴안아야 합니다. 그것이 어리석어 보인다 하더라도, 예수께서는 그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을 때, 그 십자가는 우리를 부활의 영광에로 이끌어 줄 것이며,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그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