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1주일 강론

제1독서 : 창세 9,8-15 제2독서 : 3,18-22 복음 : 마르 1,12-15

“행복하십니까?”

종신서원을 하고서 휴가를 내어 만난 친구들은 한결같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행복하니?”

 저는 우물쭈물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곤 합니다. 거짓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자리, 이 곳 수도원에서 지내다 보면, 아주 가끔은 수도생활의 소박한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개 아무 생각 없이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와 같은 사람들과 눈 떠서부터 눈 감을 때까지 지내다 보니 이 곳 수도원이 전쟁터와 같다는 것을 온 몸으로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여기가 정말 수도원 맞아?’하는 의구심이 들기 일쑤입니다. 사랑과 희망이 흘러넘치는, 지상에서 천상의 삶을 보여주어야 할 그런 곳이 바로 여기 수도원이고, 천사 같은 삶을 살아야 할 사람들이 바로 여기 앉아계신 수사님들인데, 가끔은(물론 아주 가끔입니다)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악마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 역시 또 하나의 악마가 되어 다른 사람의 화를 꾀어내기도 합니다.

이는 비단 수도원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아마 신자석에 앉아계신 형제 자매님들의 가정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랑과 신의로 맺어진 부부, 그리고 그 결실로 태어난 자녀라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정 공동체 역시 큰 것에서부터 작고 소소한 것까지 적어도 한 두 문제쯤은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야에 들어가신 예수님 또한 마찬가지 상황에 처해 계십니다. 일단 광야라는 장소부터가 문제입니다. 도저히 사람이 정상적으로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환경입니다. 더위와 추위, 굶주림, 목마름 등 온통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기다가 끊임없이 예수님을 꾀는 사탄이 곁에서 함께합니다. 그런가 하면 짐승들도 곁에서 서성거립니다. 천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탄의 유혹 앞에서 예수님은 천사들을 의지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환경 때문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어찌보면 짧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40일이라는 기간 동안만 생활하십니다. 오히려 세례자 요한이 잡히자 바로 갈릴래아 활동을 시작하십니다. 광야가 힘드셨기 때문일까요?

이런 의문은 바로 나타나는 예수님의 첫 선포에서 해결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이때의 예수님 선포는 지금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 나라가 다가와서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광야에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사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세대가 사십 년 동안 광야를 헤매고 다녔다면, 예수님께서는 단지 사십일을 통하여 당신 일생을 광야에다 뿌리박고,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온 땅에 열어 보여주고자 갈릴래아라는 작은 지방을 헤매고 다니셨습니다. 비록 광야는 사탄과 짐승, 천사가 모두 함께하는 장소지만,/ 욥의 고발자 사탄이 하느님 곁에서 하느님과 인간을 시험하는 곳,/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며,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는 곳,/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어좌 주위에서 하느님을 보좌하고 서로 “거룩하시도다”를 주고받는 완전한 하느님 나라를 나타냅니다.

우리도 수도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자신이 뿌리박고 있는 곳을 더욱 깊이 바라보도록 합시다. 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마치는 이곳을 원수들이 득시글거리는 황야로만 바라본다면, 분명 나는 불행합니다.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했습니다. 정주함에서 역동적인 수도승다운 삶이 힘을 받듯이, 우리의 공동체를 먼저 사랑하고 거기에 깊이 뿌리내려 하느님 나라를 발견해야만 그 사랑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도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감각적인 마음의 행복만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진정한 행복은 바로 하느님 나라에 있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동체를 사랑하고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답은 복음과 더불어 독서 말씀에 나타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와, 또 우리와 함께 있는 짐승들로 대표되는 모든 생물과 무지개라는 표징으로 계약을 맺으십니다. 하느님께서 바라보시고 복을 내려주시도록 이끌어 주는 무지개, 사람이 보고 파멸에서 구원받도록 이끌어 주는 무지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합니다. 제2독서의 말씀에서 엿볼 수 있듯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 모든 생물을 넘어서서 천사들까지도 함께 하는 하느님 나라의 중심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즉 하느님을 바라보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바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중심에 둔다면, 공동체의 중심에 서 계신 그리스도, 하느님 나라를 열어 보여주시는 그리스도를 역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동체를 진정 사랑하고,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통과 고난의 시기가 아닌, 은총과 기쁨의 시기인 복된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이때, 우리의 수도원, 우리의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찾아내고 조금 더 행복한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