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 강론

“하느님의 일보다 아무 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미사 전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의 일과 현세의 일에 동화되지 말고

하느님의 일에 마음을 쓰며 살라고 뼛속 깊숙이 당신 말씀을 넣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일, 곧 사랑을 통해 당신 나라의 참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과 위선의 자아를 버리고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사랑과 희생의 길을 걸으라 하십니다. 사랑의 길은 십자가의 길을 통해 완성되며, 그 길의 종착지는 바로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완성된 이 신비로운 잔치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시듯,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운 마음으로 짊어짐으로써,

주님처럼 우리 자신을 하느님과 이웃에게 온전히 내어주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강론

찬미 예수님!

이제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새로운 결실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한 여름의 뙤약볕이 필요함을 알지만, 더위로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하루 빨리 이 더위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던 여름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참된 생명이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 우리가 겪어야 할 수난과 십자가, 버림과 단호한 결단 등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베드로 사도처럼 아픔과 시련 없이 그저 좋은 열매를 맛보고 싶은 것이 평범한 우리의 마음인 듯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단호한 질책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누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열심하다는 신자들은 수도 없이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건너가는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한다”고 듣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에게 시련이 닥치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 걸까?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기도도 많이 했는데, 왜 우리 가정에 이런 불행이 계속 닥치는 걸까?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것은 아닐까?”라고 말하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성당에 다니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마음의 평화도 얻고, 우리 가족 모두가 평안하기를 바라는 기복적인 마음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복음의 베드로 사도도 함께 동거 동락하던 자신의 스승이, 그리고 얼마 전에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했던 그분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 자신에게 그 나라의 열쇠를 주시겠다는 그분이, ‘돌아가신다’고, 그것도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고 돌아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를 말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말해, 만약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따라 나선 스승이 조금 있으면 고통을 겪다가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 “예 그러십시오. 당신의 죽음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닥치지 않도록 제가 돕겠습니다.”라고 베드로처럼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베드로 나름대로 예수님을 위하는 그 마음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으시는 듯, 단호하게 질책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 얼마나 놀랐을까요? 만약 우리보고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한다면 “어찌 스승님께서 저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을까!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이토록 자비가 없는 사람을 내가 더 이상 따라 다닐 필요가 있을까!”하며, 너무 실망스러워 스승을 떠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런 강한 질책의 말씀은 당신 자신의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제자들에게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나라가 아니라, 이를 초월한 새로운 영적인 나라,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나라를 소개해 주시자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나라에 들어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권력으로 누르고, 힘으로 빼앗고, 자신의 이익과 안락만을 생각하는 나라가 아니라, 섬김과 나눔, 참된 사랑과 평화가 있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 임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 역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자기희생이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베드로 사도처럼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 사이에서 자주 긴장과 갈등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수없이 듣지만, 정작 현실의 고통이 마주 올 때, 그곳에서 주님의 뜻을 찾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현실의 안락을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거짓된 자아를 내려놓고, 죽음의 형틀인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은총이 필요한 듯합니다. 그런데, 현실 앞에 타협하고 때때로 쓰러지고, 자신의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 지우기도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본능을 넘어 주님의 법에 따라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분을 보면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본받아,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벗어 버리고, 말없이 이웃과 세상을 위해 기도와 봉사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수도원이 바로 그런 곳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내어 놓음과 섬김, 희생과 봉사, 기도와 찬양을 통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증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는 곳, 그곳이 바로 수도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신자 여러분들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십자가를 주님 나라를 향해 가는 디딤목으로 여기며 하느님의 일에 더 마음을 쓰며 살아감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현실의 여러 가지 어려움과 유혹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유혹이 찾아올 때 주님처럼 단호하게 “사탄아 물러가라! 나는 하느님의 일을 선택하겠다. 그리고 이제 내가 주님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겠다.”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작은 악습에서부터, 일상의 작은 유혹들에서부터 우리의 단호한 결단들이 이어질 때,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충만을 이 세상에서부터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보다 아무 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을 다시금 상기하며, 우리 각자의 중심에 변치 않고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두고, 주님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세상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기도하고 일하며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은혜를 청하도록 합시다.

“주님 이제 저희가 현세에 동화되지 않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저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온갖 유혹과 고난에서 당신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어 당신 나라의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