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6주일 강론]

내 마음의 가라지 - ‘이제 그냥 두렴’

미사 도입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해 가라지, 겨자씨, 누룩 등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해 하신 일은

바로 당신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가 다가 오셨음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숨까지 내어 놓으신 큰 사랑을 통해 우리 모두가 그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되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 나라를 살기에는 겨자씨처럼 너무나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우리 안에 가라지 같은 잡초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께서 마련해 주신 길을 따라 사랑으로 걸어갈 때

우리의 삶이 등불이 되어 세상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향해 가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기에 앞서 잠시 우리 마음 밭에 있는 가라지들을 헤아리며 주님의 자비를 청하도록 합시다.

                                           밀            가라지            보리 

강 론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더운 여름날 금남 농장 논에서 잡초를 뽑을 때의 농담 삼아 했던 말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농사지으면 좋겠어요. 가라지를 그대로 두고 나중에 예수님처럼 추수 때 가리면 좋을 텐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논에 잡초가 별로 없지만, 초창기에는 잡초가 너무 많아서 수련원 식구들이 여름이면 금남 논에서 살다 시피 했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뙤약볕 아래에서 잡초를 뽑으며, 저는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를 제대로 도와 드리지도 못하고,

수도원 와서 이렇게 김매기를 하며 그제야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는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피땀 흘려 일하고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오늘’을 다시금 살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는 수도원 안에서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하느님 아버지와 교회를 위해 주어진 소임에 충실하며,

특히 작고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 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가만히 성당에 앉아 있으면,

‘주어진 일에 지쳐, 가까이에 있는 형제들을 돌아보지 못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듭니다.

일에 쫓기어 마음의 여유가 없다보니,

형제를 향한 작은 배려나 관심보다는 비판과 불평을 많아진 것 같아요.

오늘 복음에서처럼 작은 겨자씨와 소량의 누룩이 자라고 부풀어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게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해를 시작하면서 아빠스님께 말씀드리고, 몇몇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결국 마음에 자국만 남기고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문제는 ‘어떤 일을 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마주 오는 사람들과 사건 하나 하나에 세심한 배려와 사랑으로 대하면 그것이 바로 천국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던지 어려움이 있기 마련인 것 같아요.

그래도 다시 웃을 수 있는 것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힘들어하면 힘들어 하는 대로, 예쁘면 예쁜 대로

그저 있는 그대로 늘 변함없이 저를 받아 주시는 주님이 항상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가 밀밭에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행여나 가라지를 뽑다가 밀이 다칠까봐 염려하는 농부의 마음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그분의 마음이 제 마음에 닿기 때문입니다.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가 밀밭에서 밀과 함께 자라고 있듯이,

우리 사는 세상도, 교회도, 수도원도 그렇게 선이 결핍된 곳에 죄와 고통과 악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며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내면의 마음 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무엇이 사랑인지 알고 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교만과 이기심이 자라나 우리를 두 얼굴로 만들어 버립니다.

주님도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기다려 주십니다.

당장 눈앞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우리 마음과는 달리

주님은 그것을 없애려다가 너마저 다칠 수 있으니,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나중에 때가 되면 다 가려내어 불에 태워 줄 테니, 네 곁에 있는 고통과 힘듦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 더 깊이 뿌리내려 살라고 하십니다.

‘주변의 일이나 너와 맞지 않는 사람을 탓하지 말고 너에게 주어진 기도와 노동에 충실해라.’ 하십니다.

그러면 나중에 당신의 때가 되면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들을 다 치워 주신다고 합니다.

더 이상 가라지를 치워 달라고 소리치지 말고, 당신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 사랑의 영양분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좋은 열매를 많이 맺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나도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 각자가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비록 가라지가 우리 곁에, 우리 안에 자라고 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들을 많이 맺어 갈 때,

우리 자신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하늘나라를 위한 겨자씨요, 누룩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행여나 깰까봐...)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마음 밭은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방법대로 가꾸어 가요.

지금까지 우리 삶에 마주 오는 가라지들을 뽑으려다가 많은 상처와 다툼, 아픔이 있었잖아요.

내 안에 있는 몹쓸 교만과 이기심, 욕망이 사라지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잖아요.

우리를 돌보시는 그분의 더 큰 마음을 헤아리며,

‘오늘’ 주님을 ‘선택’하고, ‘오늘’을 ‘기쁘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을 느끼고 하느님께로 다가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내 마음 밭을 가꾸며 지금 여기서 주님과 함께 평화로이 살아갈 때,

이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농사법, 예수님의 더 큰 사랑법을 배워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가라지를 뽑으려 하기 보다는 가라지가 더 자라지 못하도록 도와주고,

그 사람 안에 있는 밀을 더 키워주어 서로 믿음과 사랑 속에 살아갔으면 합니다.

이런 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강론을 준비하면서 참 마음에 와 닿은 시가 하나 있어

여러분들과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마음 속 가라지

마음속에 자라난 가라지

누가 씨를 뿌렸나?

언제 씨를 뿌렸나?

세월과 함께 자란 싹은

돌보는 이 없이도 잘 자란다.

너를 좋아하는 내가 싫어

수없이 다투어도 승자는 언제나 너

님께서 오신 날

슬그머니 자리 내주고 떠나더니

어느새 몇 포기 더 늘었구나.

이제는 떠나도 좋으련만

미련이 아직도 너를 유혹하더냐

날이 저물면

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방

부끄럼 없이 깨끗이 비워야 하는데

나도 너를 잊지 못하니

너를 탓할 일만도 아닌 듯

이 마음 어이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