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제2주일 강론>

무엇이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변화시켰는가?

-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

∎ 미사 도입부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사순 제2주일입니다. 매년 사순 제2주일은 주님의 영광스런 변모 사건을 들려주면서, 주님 수난에 참여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을 미리 맛보여 줍니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님의 몸과 옷이 변모되어 그분을 영광스럽게 한 것이 아닙니다. 성부의 뜻에 따라 희생과 사랑의 삶을 살아간 예수님의 삶이 그분을 영광스럽게 한 것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자 십자가를 지신 그 삶이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분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사순 시기를 보내는 우리도 일상에서 물러나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 그분이 누구이시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조용히 관상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산을 내려와 그분과 같은 사랑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분을 영광스럽게 해 드릴 수 있도록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먼저 빛나시는 그분 앞에서는 우리의 죄와 어둠이 사라짐을 믿으며, 그분이 자비를 청하도록 합시다.

∎ 강 론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여름, 처음으로 이곳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새 하얀 옷을 입고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보았을 때, 마치 하늘의 천사들처럼 눈부시고 빛났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그레고리오 성가로 노래하며 주님을 찬미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온 몸이 전율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마 처음 수도원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인 느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놈의 마음이 어떻게 된 것인지, 수도원에 입회해서 살다 보니, 그렇게 눈부시게 아름답던 수사님들이 때로는 너무도 답답하고, 밉기도 하고, 초라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을 때는 그냥 모두 검게 보이고 흰옷을 입고 있을 때마저도 검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아직 수양이 덜된 저의 좁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해 두해 수도원에 살면서 인간의 한계와 나약을 체험하면서, 눈에 보이는 옷과 들려오는 노래 소리를 넘어 ‘진솔하고 소박한 수도자의 삶, 사랑과 내어줌으로 묵묵히 일생을 살아가는 수도자의 삶’이 빛을 발하고 우리를 눈부시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 헤어진 옷과 주름진 얼굴, 갈라진 손, 안쓰럽기까지 하는 상처 난 마음들,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지만, 배려와 용서, 이해와 사랑, 나눔과 내어줌의 삶을 살아가는 수사님들의 미소에서 오늘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아름답게 사시는 분에게는 몸에서 아주 특별한 빛이 납니다.

어쩌면 그 빛은 수도자의 삶을 통해 주님께서 드러나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묵묵히 주님 곁에서 자신을 비워내는 사람들에게 그 주님의 빛을 볼 수 있는 은혜도 주어지는지는 듯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빛은 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빛을 전해 주는 사람일 뿐인데, 그리고 내 속에 주님의 빛이 가득하며 저절로 그 빛이 세상에 전해지기 마련인데, 때때로 사랑 없는 말로 원칙을 내세우며 어둠을 감추려 하니, 자신도, 보는 사람도 안쓰럽게 되고 마는 듯합니다.

자매 형제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오르셔서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변모하시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시니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됩니다(세례 때는 제자들이 그 자리에 없었음) 제자들은 황홀과 두려움을 동시에 체험하였고, 주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 대해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시어 본래의 사명을 확인하시고, 부활을 미리 보여 주시어, 장차 닥칠 수난을 준비하는 대목이라는 것을 참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사순시기를 통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함으로써 주님과 같이 영광스럽게 변화된 부활의 삶을 살 수 있으니, 남은 사순시기를 잘 보내어 영광스럽게 변모하자는 이야기가 항상 결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복음을 이해하고 나니 뭔가 허전합니다. 늘 듣던 이야기 같고, 우리의 변화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 사건처럼 몸과 옷이 변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야 우리는 삶의 고통 앞에 믿음을 갖고 초연할 수 있을까요? 참다운 주님의 영광스런 변모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주님을 영광스럽게 변모 시킨 걸까요?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참다운 영광스런 변모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 해답을 강론의 서두에 말씀 드렸던, ‘사랑의 삶이 그 사람을 빛나게 한다’는 것에서 찾고 싶습니다. 수도복이 아니라, 진정 수도자로서 묵묵히 그리고 항구히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삶이 빛을 발하듯이, 참다운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는 몸과 옷의 변화를 넘어 그분의 삶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율법과 관습에 얽매여 사는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며, 겸손하고 낮추인 모습으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셨던 예수님의 삶에서 빛이 솟아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오늘 복음 바로 앞 장면에도 나오듯이 정치적 메시아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제자들은 눈이 가리워져 예수님의 참다운 영광이 십자가와 수난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물러나 산 위에서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며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삶에 비추어 참된 영광이 무엇인지,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스승의 삶과 말씀을 몸소 체험한 제자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모두 체험하고 초대교회를 이끌어간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들을 다시 더듬으면서 구약의 그 모든 예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깨닫고 그분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체험하게 되었다는 것을 주님의 영광스런 변모 사건을 통해 초대교회 신도들에게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전하게 됩니다.

따라서 산 위에서 벌어진 주님의 영광스런 변모 사건은 단순히 얼굴과 옷이 변한 사건의 묘사가 아니라, 구약을 완성한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하느님 이해요,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체험한 사건을 구약의 상징들을 빌려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하느님을 체험했듯이 말입니다. (만약 실제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나타났다면, 제자들이 몇 백 년 전에 사셨던 그들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알아 볼 수 있었을까요? 이콘에 나오는 것처럼 그분들 발 밑에 ‘모세’, ‘엘리야’라고 기록되어 있었던 것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살다보면 참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날 때, 그에게서 남다른 빛이 나옴을 느낍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어떤 경외를 느끼게 됩니다. 십자가와 희생, 사랑과 자비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삶을 통해 제자들이 바로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듯이, 우리 역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실천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드러내게 하고, 그것이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이 우리의 사랑을 통해 빛을 발하시는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의 주름진 얼굴이 어느 누구의 얼굴 보다 환하고 성스럽게 보이듯이 우리의 나눔과 사랑의 삶이 우리를 환하게 합니다. 자식을 고통사고로 죽게 한 청년을 용서하고 자기 자식처럼 여기며 사는 어느 어머니의 모습처럼 나에게 잘못한 이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모습에서 빛이 솟아납니다.

아름다운 옷이나 높은 자리, 많은 재산과 방에 가득한 책이나 학식이 우리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과 삶 안에 예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그 사랑을 드러나지 않게 실천할 때 참다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커다란 수도원 건물이 수도원을 빛내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약함과 약점을 서로 이해해 주고 받아주며, 형제들이 함께 모여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삶이 수도원을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 복음은 산 위에서 그분을 관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그분을 만나는 시간이 감미롭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로 존엄하신 그분 앞에서면 우리 내면의 미움과 증오, 이기심, 사람과 재물, 자리에 집착하는 죄스런 자신의 내면들 때문에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가득해 옵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그분 앞에 떨고 있는 우리를 예수님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까이에 오셔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를 손수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일어나 가자. 너의 어둠은 나의 빛으로 용서되었다. 이제 나와 함께 산을 내려가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삶을 살자” 라고 말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아브라함처럼 주님과 함께 매일 매일 자신에게서 떠나 주님께로 나아가는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희 모두의 삶에 당신의 사랑이 가득해져 그 사랑이 발하는 빛으로 저희의 아픔과 상처를 낫게 하시고, 저희와 세상이 당신의 영광으로 변모되게 하소서. 사랑의 삶을 통해 제자들이 당신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았듯이, 저희도 사랑과 나눔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저희가 당신의 자녀임을 알아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