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8일 연중 제30주일 다해

  고 이사악 신부

18,9-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수정 성모의 트라피스트 수녀원

강론

수도원에 들어와서 ‘옛일은 잊고 살자’하고 마음을 먹고 사는데도, 가끔 저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생기곤 합니다. 다른 형제들이 저의 과거 이력을 가지고 우스개 소리를 할 때 그렇습니다. 제가 수도생활을 하기 전에 세무공무원이라는 조금 별난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이 세금과 세무서생활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이사악 수사는 자기들과 노는 물이 달랐던 사람인데 이렇게 수도생활을 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른다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합니다.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 지겨워졌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올라 치면 내가 나랏돈을 많이 떼먹어 검찰의 수배를 피하기 위하여 수도원으로 숨어들었는데 조금 후에 공소 시효가 지나면 세탁해둔 돈을 찾아서 카리브해로 떠날 것이라고 허풍을 떨면서 선수를 쳐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과거사가 형제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때는 보통 오늘처럼 복음에서 세리가 등장하는 날입니다. 키 작은 세리 자캐오, 예수님을 따라나선 세관장 레위, 복음서를 저술한 마태오 그리고 오늘 들은 겸손하게 기도하는 세리 등 복음에서는 적지 않게 세리들이 등장하고 그 내용이 미사에서도 자주 읽혀집니다. 세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리의 원천, 사리사욕의 상징으로 ‘악랄한’ 이라는 형용사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직업으로 인식됩니다. 제가 한때 악랄한 세무공무원이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살던 시대에 세리란 창녀와 더불어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으로부터 청부를 받아 세금을 징수했는데 항상 정해진 액수 보다 많은 세금을 징수하여 착복하였기 때문에 민중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는 창녀와 세리는 회개한 이들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윤리를 엄격하게 실천해 내면서 당대 사람들의 칭송을 받던 바리사이를 위선자라고 강력하게 비판하시는 반면에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창녀들이나 세리들과 어울렸는데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순수함을 발견하셨기 때문입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달리 깊은 통찰력과 이해심을 지닌 예수님의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혜안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냥 대놓고 꾸짖으시면 될 일인데 살짝 돌려서 비유를 드시는 예수님의 태도도 흥미롭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 알아들어서 고치고, 아니면 평생 그 꼬라지로 살아보라는 냉소적인 태도로 보일 수도 있으나, 다른 이의 영혼을 지배하려들지 않고, 개인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존중하려는 예수님의 배려로 보고 싶습니다. 하여간에 예수님께서 드시는 비유에는 의인으로 각광받고 있는 바리사이와 죄인으로 멸시 당하는 세리가 등장합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갔고 하느님 대전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삶에서 두 사람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바리사이는 말 그대로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사는 사람이었고, 세리는 성전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이고, 그의 입에 하느님의 찬미를 담기가 민망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 보다는 세리가 더 하느님의 마음에 들고,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단언하십니다. 겸손하게 기도하는 세리의 자세에서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읽으셨고 그나마 남아있는 한 조각 순수함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바리사이의 교만을 간파합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을 들어 높이기 위하여 교묘하게 남을 깎아 내립니다. 남들의 결점이나 잘못을 들추어내고 비방하면서, 나는 그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자부합니다. 남들이 낮아져야 내가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져 보이고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듯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나 철저한 삶은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이 아니라 교만스런 자기 자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이런 체험들은 한 번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외적으로 드러나는 측면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상대적 우위를 말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비교 우위가 구원의 선행조건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행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쥐고 있으므로 우리의 행업을 뽐내기 보다는 항상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너가 낮아져야 내가 높아지고, 내가 옳으니 너는 틀렸고, 이런 흑백 논리, 이분법적인 논리로는 절대로 조화나 일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런 논리를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항상 나누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을 똑부러지게 이쪽 저쪽으로 나누어서 보려는 시각 때문입니다. 그들은 항상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고 합니다. 온 세상을 두 편으로 나누려 합니다. 그러면 결국 그의 내면도 두 쪽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말하는 바와 행동하는 바가 달라집니다. 겉과 속이 달라집니다. 믿음과 삶이 따로 놀고, 나와 너가 분리되며, 인간과 하느님이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인간이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성향을 벗어나는데 필요한 것이 여기에 자신을 낮추는 것, 자신의 입장을 양보하는 자세 곧 겸손일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대신에 남을 높여주고, 잘못한 이들을 질책하고 업신여기기 보다는 이해해주고자 애쓰는 노력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의 마음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고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고 일치로 다가가게 만듭니다.

물론 바리사이처럼 지킬 것은 똑부러지게 지키면서 사는 삶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흐트러짐 없이 그리고 당당하고 올바르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옳게 살았다고 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 말고도 올바르게 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시각만이 옳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삶에 자신의 진실된 모습이 투영되지 않을 수도 있고, 외적인 삶으로 남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 알 수가 없는 노릇이죠.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면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합니까?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의로운 일을 행해서, 내가 나서서 내 힘으로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고 무엇을 완수하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이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 끝내 하느님의 선한 의지가 여기에 실현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과 그 믿음을 바보 같이 믿고 지켜내는 순박한 마음이 뭔가 모순되고 앞뒤가 안 맞는 이 현실을 개선하는데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지금 처해진 조건이 어떻든 간에 우리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시리가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