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일 가해 강론

고 이사악 신부

복음 마태 5,1-12ㄴ

예수께서 군중을 보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는데, 제자들이 다가오자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

“복되도다,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복되도다, 슬퍼하는 사람들!

위로를 받으리니.

복되도다, 온유한 사람들!

땅을 상속받으리니.

복되도다,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배부르게 되리니.

복되도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자비를 입으리니.

복되도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하느님을 뵙게 되리니.

복되도다,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니.

복되도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복되도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그대들을 모욕하고 박해하며 온갖 사악한 거짓말을 하면! 기뻐하고 신명내시오. 그대들이 받을 상이 하늘에 많습니다.

도입말

오딜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준비하기 위하여 우리 공동체는 올해를 성화의 해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 올해 들어 두 번째 월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이 프란치스코 신부님께서 피정강의 말미에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도자는 겉으로는 산이어야 하고 안으로는 강이어야 합니다.” 수도자는 한자리에 우직하게 머물러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우리 베네딕도회 영성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면서도 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자리를 맑고 향기롭게 만들어 가는 일 바로 성화의 해를 보내고 있는 우리들이 몸소 실천해야 할 사항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들이 올 한해 열심히 살아 진정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이들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서 이 미사를 시작합시다.

강론

며칠 전 휴게 시간에 한 지원 형제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신부님, 질문 있는데요?” “예, 하십시오” “있잖아요, 성모님은 원죄가 없잖아요?” “예”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이브가 원죄를 지어서, 하느님께서 아담 보고는 평생 땅을 파면서 살라고 했고, 이브 보고는 아기를 낳는 고통을 받을 거라고 했잖아요?” “예, 그래서요?” “그러니까 성모님은 원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예수님 낳으실 때 고통 없이 나으신 거 아닌가요?” 저의 모자란 신학 지식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이 비수와도 같이 날카로운 질문에 저는 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바보 같은 대답으로 나의 무식을 감추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성모님의 무통분만설은 아직 교황청에서 믿을 교리로 선포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냥 혼자 마음속으로 믿으시면 될 것 같네요” 이 대답을 하고나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신학교 다닐 때 나이 어린 동기 신학생 한명도 똑같은 질문을 저에게 해온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지원형제가 무안한 표정을 짓자 미안해서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는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우리 신앙의 진정한 핵심은 인간의 언어로 풀이된 교리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에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달을 보라고 손짓하면 달을 보기 보다는 손가락을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어떤 대상의 실체나 일의 핵심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핵심을 파악하면 지엽적인 일은 술술 풀려나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 가르침의 핵심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이자 포인트가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 나옵니다. 마태오 복음에 따르면 산상 설교는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군중에게 하신 첫 설교였습니다. 이 설교 이전에 하신 말씀은 하늘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라는 짧은 선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설교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고자 했던 하느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산상설교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끄심에 힘입어 광야에서 홀로 마귀와 싸우면서 깨달았던 바, 곧 하느님의 지혜가 그대로 녹아있는 설교라고 하겠습니다. 핵심, 포인트라는 말에 걸맞게 산상설교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모든 메시지가 여덟 내지 아홉 마디 말로 집약되어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은 이 행복 선언을 실제적인 삶과 연결시키지 않고 단지 영적인 교훈으로만 해석하였습니다. 행복 선언을 불행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서 받을 보상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해석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가난하고 굶주리는 형제들에게 “지금은 배고프고 힘들겠지만 참으십시오. 저 세상에 가서는 배부르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행복해 질 것입니다” 라는 알량한 위로의 말 밖에는 해 줄 일이 없어집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슬퍼하며 억압받는 이들은 나중에 하느님께서 상급을 주시고 위로하실 것이므로, 하느님의 소관이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인 셈입니다. 그러나 행복선언은 현실의 불합리한 상황이나 비참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과 조건들을 개선시키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이들이 복되다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더 아름다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몸소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였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복된 아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란 자신의 평안, 안락, 명예 등의 욕구가 실현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전하는 행복은 이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하는 행복은 자신의 욕구를 추구하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정의에 헌신하는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을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욕구 충족을 통하여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면서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주변에서 행복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가난한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또한 그들은 이런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이 자기 이기심만을 내세우면서 서로 다투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현실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비정한 세상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그들은 진정 온유한 사람들이며 한편 불의한 사회에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용기는 억압받는 이웃들,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작은이들을 향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정의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불의한 세상과 싸웁니다. 자신을 버렸으니 사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심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이며 설령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더라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없는 이들, 아픈 이들, 못 배운 이들, 무시당하고 서럽던 이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보여주시려고 분투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과 그리고 로마제국과 맞서 싸우던 힘든 삶이었지만 마음 한가운데서부터 행복과 기쁨이 솟아올랐기에 예수님은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룩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던질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이룩될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몫이 될 것이므로 그들을 진정 복된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하여 반드시 정의를 부르짖고 투쟁하면서 제도와 체제에 맞서서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과 은사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나라 건설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이 일에 동참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적인 영적 투쟁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와 싸우면서 정화의 시간을 보낸 것처럼, 우리 마음을 닦고 고요하게 만들어서, 우리 자신이 성령의 거처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적인 영적 투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지만 특히 수도자들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묵과 기도 그리고 여러 가지 금욕적인 수행 통하여 얻어지는 수도자들의 영성이 세상을 향한 자극이 되고 아울러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 까시아노에 따르면 이 영적 투쟁의 목적은 마음의 순결, 즉 깨끗한 마음에 이르는데 있습니다. 이는 산상설교와도 일맥상통하는 바입니다. “복되어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하느님을 뵙게 되리니” 결국 수도자들의 영적투쟁은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고 수도생활의 핵심이자 포인트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딜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수도원을 고치고 성당 짓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이 수도생활의 핵심과 포인트를 다시 한 번 집고 넘어가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정화의 해에 이어 올해 보내는 성화의 해가 구호만 외치다 끝나는 일회성 캠페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고 핵심에서 벗어난 것들이 있다면 다시 정리해 보는 의미 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