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29일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강론

  고 이사악 신부

요한 10,27-30

그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옵니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그들을 나에게 맡기신 내 아버지께서는 만유보다 크시며 아무도 그분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

찬미 예수님, 그야말로 햇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릴 듯한 화창한 봄날입니다. 그동안 온통 화재 이야기로 우울해 있었는데 성소 주일을 맞이해 많은 청소년 여러분들이 수도원을 방문하셔서 우리의 마음이 한층 더 밝아집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우리 수도공동체의 이름으로 여기에 오신 모든 분들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환영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당신을 믿는 이들을 일컬어 내 양들이라고 표현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종종 그 당시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개념들로 아버지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조상 대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양은 친숙하다 못해 가족과 같은 가축이며 유용하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양에게서 고기와 젖 그리고 털과 가죽을 얻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최대의 명절인 과월절에 어린 양이 빠지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죠. 성서 특히 구약에서도 이 양이라는 동물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며 특히 귀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에 제물로 오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가운데서 실제로 양떼를 본적이 있는 분들은 드물 것입니다. 물론 그림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기는 하였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를 보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는 꼭 한번 진짜 양떼를 코앞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마 성소 주일 행사라고 생각되는데요. 아무튼 본당 신부님께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모두 데리고 이시돌 목장으로 가서 사생대회를 열었는데 거기서 양떼를 직접 보았습니다. 처음에 신부님께서 우리를 이시돌 목장에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몹시 들떠 있었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저의 고향에서 이시돌 목장이라는 곳은 외국 신부님이 일구어놓은 유럽의 한 귀퉁이 같은 곳으로 생각되었고 무엇보다도 말로만 들었던 양들을 진짜로 보여준다고 신부님께서 약속 하셨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목장에 도착하여 제 눈앞에 나타난 양떼들은 텔레비전에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발랄하게 뛰어놀던 그 양떼들도 아니요 광활한 벌판을 하얀 뭉게구름 같이 여유롭게 떼 지어 다니던 양떼들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놈들은 흙먼지에 덮여 잿빛으로 변한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시종 매애 매애 소리를 내면서 거기에다가 지독한 냄새까지 풍기며 풀을 뜯어 먹는 데만 온통 정신이 팔려 사방 천지를 돌아다니는 뚱뚱한 동물에 불과했습니다. 그에 실망해 버린 저는 사생대회에서 아무런 작품을 낼 수가 없었고, 실제가 아닌 상상의 양떼를 그려내고 상을 받아낸 친구들을 속으로 비열하다고 욕을 해댔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양에 대한 안타까운 추억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직접 보고 체험하지 않고서는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경험되는 모습만이 그 사물의 진정한 면모라고 단정 짓기도 사실 어렵습니다. 이렇게 관념과 실재와의 차이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흔히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이론과 현실은 항상 동떨어져 있어 보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학생들은 깨닫죠.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바가 세상에서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던 선생님들의 가르침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곧이곧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한 가지 목표에 연결되어 알게 모르게 서로 작용하면서 서서히 현실에 적용된다는 것을 파악합니다. 이 목표가 바로 사회적 이상인데 흔히 민주, 자유, 정의, 평등 같은 말로 표현되며, 우리들도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을 실현해 내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이렇게 일반 사회에서도 이상이 제시되지만, 가장 뚜렷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종교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도 종교적 이상을 가지고 그에 따라 살아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상은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말씀했던 바대로 그분이 사셨던 바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사셨습니다. 그 분이 가졌던 이상은 바로 공동체적으로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는 것이요, 개인적으로는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이 이상을 실현해 내기 위하여 온 생애를 걸었습니다. 썩고 병들고 부조리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 꽃피우고자 그리고 이기심으로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인간을 진정한 사랑의 존재로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어린 양처럼 십자가 희생제사에 바치고 이상을 이루어 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포기하는 자만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낡은 삶, 자신이 집착했던 모든 것 더 나아가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려야 한다고 몸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상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선택되었고 불린 사람들입니다. 양들이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 따라가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그분의 이상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이상은 우리들을 생명의 샘으로 이끌어 줄 것이며, 그 이상이 이 땅에서 내 안에서 실현될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고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무슨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스스로 결성된 단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 즉 성소를 받고 모인 주님의 양떼이며 땅 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기 위하여 세워진 인류를 비추는 빛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를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합니다. 예를 들어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맡겨진 신자들을 돌보며 교회를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분의 가르침을 전합니다. 또한 그 밖에 일반 신자들도 나름대로 교회에 봉사하고 각자의 가정에서 자녀들을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 길러냅니다.

이분들 말고도 예수님이 제시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수도자들입니다. 수도자들은 더 철저하게 예수님을 따릅니다. 수도자들은 가족과 재산을 버리고 세상에서 물러나 혼자서 혹은 공동체를 이루며 하느님의 친교 안에서 삽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노동을 통해 혹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세상과 교회에 봉사합니다. 이 부르심은 아까 말했던 다른 부르심들 보다는 더 독특하며 말로 간단히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소주일 행사의 주제인 ‘와서 보시오!’ 라는 말처럼 일단 와서 보는 게 제일 낫을 것이며 저희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도성소, 특별히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서 내려주신 화창한 하늘 아래에서 수사님들과 직접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사는 모습도 직접 보면서 과연 수도성소가 무엇인지, 내 안에도 이러한 부르심이 느껴지는지 자신을 살피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수사님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실현해내고자 하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상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마음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모쪼록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