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강론(가실성당)

박안셀모 신부

<미사 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이렇게 가실 본당에 와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고향에 온 것처럼 참 기쁩니다. 저희 집도 시골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오늘 우리는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조상들을 기억하고, 또한 올 한해 주님의 축복 안에서 잘 지내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미사를 드리기에 앞서 잠시 침묵 가운데 그 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올 한해를 좀 더 의미있게 살 수 있도록 작은 다짐을 주님께 드리도록 합시다.

강론

해마다 설 명절이 되면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멀리서 지내던 사람들도 부모와 형제를 찾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가족이 함께 모여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들께 차례를 지냅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주신 분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 명절은 죽은 이들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설 명절에는 산 이들과의 ‘만남’도 있습니다. 집안 어른들과 친지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해에도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하고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인 이들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가족과 친지의 안부를 묻습니다. 지난 일들, 이룬 일들과 이루지 못한 것들, 기쁨과 슬픔, 보람과 아쉬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윷놀이나 화투놀이를 합니다. 그래서 설 명절은 산 이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설 미사를 통해서도 설날의 두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오늘 설 미사의 의미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하는 것입니다.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 먼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제1독서를 통해 모세가 하느님의 명으로 이스라엘에게 복을 빌어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의 뜻을 따르며 더욱 풍성한 은혜를 느끼는 한 해가 되게"(예물 기도) 해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늘 설 미사는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을 위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성인들과 함께 영복을 누리도록"(본기도) 기원합니다. 제 2독서에서는 이 세상이 결국 모두 사라질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해야 하며(제2독서, 야고 4장), 복음에서는 늘 준비하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복음, 루가 12장)

한마디로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서 설 명절의 의미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설날을 맞이하여 조상들을 기억하며, 그들과 하나가 되어 이날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본기도)입니다. 새해 첫날을 봉헌함으로써 한 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해 첫날을 하느님께 봉헌함으로써 하느님과의 만남의 자리가 이루어지고, 살아있는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이 만나고,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이들이 만나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새해 첫날 오늘 늘 우리 곁에 우리를 만나기 위해 먼저 다가 오시는 주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올 한해도 나의 아내를 통해서, 나의 남편을 통해서 나의 자녀들을 통해서, 부모님을 통하여, 내가 만나는 이웃을 통해서, 그리고 때로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과 사건을 통해서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아 뵈올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곧잘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잊고 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이 우리 삶을 통해 드러날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최선은 바로 사랑입니다. 상대방의 방식대로, 나아가 하느님의 방식대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자신을 수양하고 마음을 비우며 기도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이야기하는 늘 깨어 기다리는 삶일 것입니다. 깨어있을 때 우리는 그분을 더 잘 뵈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생동안 하느님과의 만남, 이웃을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을 갈망하고 찾아갈 때 우리 삶이 끝난 다음에 우리는 그분 앞에 갔을 때도 우리는 그분을 금방 알아 뵈옵고 기쁨 가운데 그분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하지만 일생동안 그분을 찾지 아니하고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살았을 때 우리는 이 세상 삶이 다 끝난 다음 하느님 앞에 가더라고 하느님이 누구이신지 알아뵙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 곁에 있지만 하느님을 알아 뵙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이 미사 중에 하느님께, 그리고 우리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하신 우리 조상님들께 감사드리고, 서로 사랑하는 삶으로 올 한해를 살아가도록 은혜를 청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나는 지금 천국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옥을 살고 있습니까? 사랑할 때 바로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