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일강론(진복)

박안셀모신부

매일 새벽, 동이 트기 전이면 어김없이 수도원 안에는 맑고 은은한 종소리로 가득 찹니다.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하느님의 소리입니다. 이불 속 따스한 온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벌떡 일어나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세수를 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고 난 후, 수도복을 입고 성당으로 향합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아직 남은 잠을 깨워줍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느님께 기도 드리기 위해 가고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당신 뜻대로 살게 하소서.”

성당 안에는 언제나 일찍 와서 이미 기도하고 계신 수사님들이 계십니다.

아빠스님의 신호와 함께 독서의 기도와 아침기도가 시작됩니다. ‘주님 제 입시울을 열어주소서’ 우렁찬 사내들의 기도 소리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이런 공동 기도뿐만 아니라, 아침기도 후 성당과 묵상실, 각자 방에서 하는 개인 기도 시간은 우리를 하느님과 더욱 밀접한 사이로 만들어 줍니다. 촛불과 말씀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 주님의 품 안에 머무는 이 시간은 우리를 주님께 대한 한없는 사랑에 젖어 들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종소리와 함께 다시 성당에 모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는 미사를 봉헌합니다.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하루를 살아갈 영적 양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우리는 너무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각자 주어진 일터에서 충실히 일하며, 기도하며 하느님의 일에 마음 쓰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는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삶을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끝기도 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놀이를 하며 지내는데, 우리는 침묵 가운데 독방에 앉아 주님과 함께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의 모든 일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린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고, 행복감에 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내어 놓고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지 않고, 마음의 가난을 위해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걱정하고 슬퍼하며 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 때문에 형제, 자매들에게 온유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않으며, 일터에서 또 형제들과의 관계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자 애쓰기에 주님의 축복으로 배부른 우린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닮고자 애쓰기에 그분의 자비를 닮아 가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에 싸여 형제들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형제들의 약점을 받아 주고 감싸주며, 서로 돕고 사랑하며, 참된 평화를 이룩하는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들이기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위해 고독과 침묵 가운데 밀려오는 유혹들을 이겨내며 주님의 전사로서 성실히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받은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진실히 진실히 바랍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참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주신 참된 행복 안에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진복 선언은 이루지 못할 나와는 먼 행복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께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수도자들과 같이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 각자가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라는 것을 온 마음으로 체험했을 때 이 모든 행복 선언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 모두가 주님께 대한 감사로움으로 일상을 바라본다면, 우리 주위에는 행복이 가득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가정이고, 때로는 삶에 고달픔을 하소연하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주님께 희망을 두고 가난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며, 세상 안에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주님의 평화를 심어 가는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행복을 넘어선 참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올바른 것들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님의 축복을 받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세상 안에 주님이 주신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 질 때 하느님 나라는 더욱 커져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참된 행복 가운데 살아가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오늘 들은 진복 선언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 분명히 말해 줍니다. 진복선언 중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굶주린 사람, 깨끗함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이런 마음으로 사랑할 때, 세상이 주는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너무도 큰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행복하다, 또는 복되다”라는 말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운이 좋은 사람, 팔자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고 복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을 통해서 가지는 가치들입니다. 하느님 왕국에 속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구약 성서는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이라 불렀습니다.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오로지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 하느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것이고, 하느님도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제 1독서에서도 하느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하시면서, “무엇을 다시 부끄러워하랴. 내가 기를 못펴는 가난한 사람만을 네 안에 남기리니, 이렇게 살아 남은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이름만 믿고 안심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하느님이 없어도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하지만, 하느님이 없어도 살수 있다고 여긴다면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참된 부유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 미천한 것, 멸시받는 것, 아무 것도 아닌 것, 세상의 어리석을 것들을 택하시어 그들에게 당신의 행복을 나누어 주신다고 사도 바오로도 오늘 제 2독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의 의미와 가치, 참된 행복은 오로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가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가난한 마음’을 가질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산상 설교의 말씀은 들을 때는 참 좋은데, 실천하기는 참 힘들고 두렵기까지 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경우는 산상 설교를 완벽을 요구하는 법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산상설교는 초대 교회신자들의 교리서로서 “하느님의 구원에 대해 감사드리며 새 삶을 시작하라는 복음” 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되어라, 나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다” 따라서 산상설교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삶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 여러분,

행복은 멀리 있는 것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그리고 수도자로 주님과 함께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도 큰 행복입니다. 일상의 작은 것 안에서 주님의 손길을 느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이 물밀 듯 밀려옴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미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우리의 매일의 일상적인 삶 가운데 너무도 많은 행복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잠시 동안 우리 각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봅시다.

나는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만약 주님이 주신 일상의 행복들, 그분을 알고 그분께 의지하며, 그분 닮은 모습으로 살고자 애쓰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면,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무엇이 나의 참된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가?” 반성해보도록 합시다.

아버지 하느님 이 세상에 당신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가난한 마음으로 모든 것은 당신께 의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저희가 당신으로 말미암아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