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3주일 강론 - 사랑에 눈뜨길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

박안셀모 신부

어떤 젊은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수사님 매일 그렇게 똑같은 일과표에 따라 살면 싫증이나 권태로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지난 주에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매일 다섯시(다-아시)에 일어나 똑같은 시간에 기도하고 일하고 밥 먹고 하는 생활을 그 젊은이가 보고는 일생동안 저렇게 매일 반복된 생활을 한다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저는 제가 지원자 오리엔테이션에서 어느 신부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인용해서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선형의 삶, 그 가운데에 계신 주님을 향해 가는 삶입니다. 우리의 규칙적인 일과는 똑같은 모양을 지닌 기차의 레일과 같은 구실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해 묵묵히 달려 갈 수 있도록 지켜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는 항상 현재만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 주님을 만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미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날마다 회개의 삶을 살라는 예수님의 당부입니다.

이집트에서 억압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던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하였듯이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약속된 땅을 향해 40년을 걸어갔듯이 우리도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으며 주님의 나라를 향한 여정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독서의 기도 초대송에서 “40년 동안 싫증이 나버려 나는 굳이 말하였노라 너희는 내 안식에 들지 못하리라”라는 구절을 들을 때 마다, “내 나이가 40이 되었을 때 주님께서 나에 대해 싫증이 나지 않으셔야 할텐데...내가 수도생활 40년을 하고 난 다음에도 주님께서 나에게 싫증이 나지 않으셔야 할텐데..그래서 너는 내 안식에 들지 못하리라 라는 말을 들으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주님의 특별한 선택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지만 우리 마음은 주님의 사랑을 잊어 버리고 세상 것에 집착하며, 우상을 섬기고, 작은 고통에도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찾고, 고통 앞에 주저앉아 원망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미지근하게 살아갑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 안에의 권태로움과 타성에 젖기도 하고, 필요할 때만 “주님, 주님”하고 찾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여러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입니다.”

개신교를 믿는 어떤 친구가 가톨릭을 신자에게 찾아와서 울면서 호소했다고 합니다. “내가 너를 너무도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데, 난 니가 너무도 불쌍하고 안타깝다. 너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으니까 말야.” 울면서 이야기하는 친구의 호소를 들으며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친구 나름대로 진심으로 자기를 위하여 하는 이야기인지라 마음이 몹시도 아팠다고 합니다. 그 개신교 친구는 자신의 교를 믿으면 구원받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나 수도서원은 구원의 보증이 아니라, 참된 행복을 향한 여정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 주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고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말만하고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울리는 징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를 믿는 우리를 멸망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니 이제 돌아서서 너의 중심에 당신을 모시고 참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아라.’는 주님의 호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우리 안에 변화하려는 마음과 변화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함께 있음을 보게 됩니다. 피정이나 미사를 통해 뜨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다짐을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예전의 모습을 따라 살게 되고, 이것을 반복하다 보면 이제는 결심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거나 식상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미사나 강론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마음 안에 다시금 불평과 비판의 소리만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은 왜 이 모양일까 하고 한숨을 쉬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신자로써 삶의 열매,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해서 아버지 하느님께 간구해 주셨습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주인께서 이것을 잘라 버리시지요.’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몸과 피를 통해, 사랑과 은총의 거름을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시금 그것을 양분으로 받아먹으며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내년’이란 말에 너무 시간적 제약을 두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기다려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우리를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특별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받은 사랑을 나누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위대한 교부 떼르툴리아노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죽는 날까지 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서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이 바로 회개이기에, 자신만을 생각하는 우리의 본성을 비우고 주님을 채우기 위해서는 일생동안 끊임없는 정화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회개는 믿지 않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이 일생을 거쳐 해야 할 몫입니다. 일상의 작은 것에서부터 하느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인 듯하지만 우리가 묵묵히 주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궤도를 벗어나지 말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갈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와 계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의 빠스카 축제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40일간의 사순시기를 통해 매일 매일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회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부활의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위해 오늘도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주인께서 이것을 잘라 버리시지요.’

열매맺지 못하는 우리를 대신에서 포도원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대신 기도해 주십니다.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가 변화되기를.

우리가 새로운 모습으로 정화되기를

우리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갈 수있기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에 눈뜨기를 기다려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