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박안셀모 신부

찬미 예수님!

오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이 내려오신 날이며, 무서워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주신 날, 바로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로써 파스카 축제가 완성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렇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시작될 수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을 ‘교회의 생일’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성령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릅니까? 저는 성령하면 일치, 친교, 협조자, 사랑의 불꽃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 가운데서도 제가 일치를 잘 이루지 못해서 인지 "일치"라는 말이 계속 맘 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이라는 주제로 묵상한 바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크든 작든 '갈라진 두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이들을 만나 면담을 하다 보면 '사람들 앞에 보여 지는 나'와 '홀로 있을 때의 나, 직장에서의 나와 가정에서 혹은 성당에서의 나'가 다름을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기도와 일의 조화로움을 찾지 못하고, 하느님의 일과 세상의 일의 괴리 앞에 타협하기도 하며, 돌아서서 홀로 자신의 내면에 직면하면 삶의 공허감과 무의미함이 밀려올 때가 있어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으로부터 잠시 도피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TV드라마에 빠져들기도 하고, 하지만 공허하긴 마찬가지라고 호소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비단 젊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기(氣)나 도(道)같은 신종교에 빠지기도 하고 육체와 건강, 돈이라는 우상을 쫓아 사는 듯합니다.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것도 어쩌면 축구를 보는 동안에는 삶의 고단함도, 분열된 자아와 현실의 비참함도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나약한 자신이 이루지 못할 꿈을 축구 선수들에게 투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대리 만족이죠.

이렇듯 사람들은 삶의 허함을 채우기 위해 이러 저리 뛰어 다니지만, '이것이 길이다 저것이 길이다'라고 외치기만 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이 어디인지 찾은 사람도 열쇠를 잃어버려 그 앞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지난날의 상처에 얽매여 자신이 만들어 놓은 내면의 감옥에서 안주하거나 전쟁을 벌이며 살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인생은 욕심과 욕망, 무절제와 교만의 가면을 벗고 하느님 앞에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어 드리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묻은 때를 벗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이 바로 우리 인생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래의 자아,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그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것, 그래서 그분과 일치되어 하늘나라의 참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의 참 목적이라 생각됩니다. '분열된 자아'를 인식하고 성령을 통해 주님 안에서 일치하여 '통합된 자아'를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는 동안에 해야 할 과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너무도 약해서 인지 한번 쓴 가면을 좀처럼 벗기 어려워합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삶의 굴레를 벗어나 나비가 되기를 두려워합니다. 저만큼 간 것 같은데, 다시 제자리에 맴돕니다. 미움과 증오의 늪에서 헤어 난 것 같은데, 동시에 게으름과 불평의 바다 가운데 놓여 있는 자신을 봅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조여드는 거미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이렇게 숨 쉴 수 있고, 사람들 틈에 있고, 가족이 있고, 일이 있어 행복하다며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듣고 강론을 듣고 묵상을 하지만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세상 삶이 참 슬퍼집니다. 나는 지금 무얼 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아와 직면하면서 갈라져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성령을 받으시오"라고 말씀하시며 당신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성령께서 분열된 우리, 두 얼굴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가면을 쓴 우리들에게 일치된 마음,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부어 주시고자 합니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얼마나 모잘 것 없는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성령을 통해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전해 주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에 감동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있고 싶지만 더 오래 더 많이 함께 하기 위해 떠나시는 예수님의 그 심정을 헤아리다 보면 집착하는 우리 사랑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싶습니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를 대상으로 감기 바이러스에 가장 강한 사람을 찾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공기 좋은 곳에 사는 이들도, 건강한 젊은이도 아니었습니다. 갓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감기 바이러스에 가장 강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랑을 통한 일치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인간의 사랑의 힘이 이러한데 하느님의 사랑의 힘 곧 성령의 능력은 얼마나 위대하겠습니까! 다락방에서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목숨 바쳐 당신을 증거 하게 하시고, 서로 갈라진 언어를 모으시고, 한 마음 한뜻이 되어 주님을 찬미하는 삶을 살게 하시며, 불가능한 용서를 가능하게 하는 그 사랑의 성령이 오늘 우리에게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성령이 내려 공동체 안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하느님의 질서를 세워주십니다. 완고한 마음을 변화시켜 새롭게 만들어 주시고,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게 해 주시는 문의 열쇠가 되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우리는 이미 세례와 견진을 통해 이렇듯이 대단한 성령의 세례를 받았는데 왜 우리의 생활은 분열되어 내적인 평화가 없고, 무기력하고 초조하고 두려움과 번민(煩悶)에 싸여 있을까? 왜 우리 가정과 공동체 안에 때때로 성령의 활기와 일치된 모습보다는 불평과 불신이 밀려오는 것일까? 이런 말을 하는 지금도 졸립고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성령께서 우리에게 와 계시지만, 우리의 생각과 삶이 성령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거울은 원래 다른 물체의 상을 반사하는 것이지만, 그 거울에 먼지와 이물질(異物質)이 잔뜩 끼이게 되면 어떤 상(像)도 깨끗이 비춰지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먼지 낀 거울을 깨끗이 하여 성령의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선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깨끗이 씻는 일일 것입니다. 그 다음은 증오나 원한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주님께 내어 드리고 용서하는 일일 겁니다. 증오와 원한으로 들끓고 있는 마음속에 성령이 활동 할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한 지나친 집착 또한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는 장애물입니다. 어떤 다른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집착은 영혼은 얽매는 사슬인 것입니다. 또한 성령의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형제 상호 간의 믿음입니다.

이렇게 죄와 집착에서 벗어나 용서와 믿음의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새롭게 성령의 빛을 반사할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창조를 맞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셨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아담의 얼굴에 생명의 숨을 부어주시어 생명체가 되게 하신 것처럼(창세 2,7) 말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창조활동으로 선교사명에 따라 사도들만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가 성령의 입김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삶, 그 자체가 바로 선교입니다.

사랑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두려움과 걱정, 번민으로 갈라진 우리의 영혼을 일치시켜 주시고 우리를 참된 평화와 기쁨의 삶으로 인도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마음을 열고 주님의 영을 받아들입시다. 완고한 마음, 무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주님의 영께서 인도하시는 길로 걸어갑시다. 용서의 길, 사랑의 길, 절제의 길을 걸어갑시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묶여 있는 사슬을 끊어 버리고 주님의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신비가 중의 한 명인 성 시메온은 "성령을 통하여 모든 이의 부활이 완성된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어 주님과 형제들 그리고 자기 자신과 일치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항상 새로운 성령 강림을 필요로 합니다. 특별히 오늘 바로 지금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우리에게 변화와 일치를 위한 성령의 불길을 주십니다. 우리 맘 안에 장애물을 치웁시다. 주님의 영이 활동하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기도를 알려 주시는 성령께 다음과 같은 기도를 함께 바치고 싶습니다.

오소서, 성령이시여,

갈라진 저희의 영혼을 찾아오소서.

당신이 만드신 마음들을

천상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소서.

당신의 은총으로 저희가 아버지와 아들을 알게 하소서.

아버지의 영과 아들의 영, 당신 안에서

저희의 믿음이 영원히 지속되게 하소서.

오소서 성령이여

모든 더러움을 씻어 주소서.

모든 상처를 감싸 주소서.

모든 갈라진 관계를 새롭게 하소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게 하소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오소서 성령이여

믿는 이들의 마음을 충만케 하시고

그 안에 당신 사랑의 불을 놓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