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성체와 성혈 대축일 강론

박 안셀모 신부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이 축일은 1247년 리에즈에서 쥴리앙이라는 한 수녀님의 열성에 의해 처음으로 드려졌으며,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 때부터 공식적으로 지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 주신 예수님의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되새기며 그것을 먹고 마시는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하나 되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웃을 위해 내어 놓기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받은 가장 큰 은혜 중의 하나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과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일 겁니다. 아무나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나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런 신자로서의 특은을 잊고 삽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에 있어 영적 양식인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심을 어려워하고, 무감각하게 여기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은 성체와 성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첫영성체 교리를 위해 겨울 방학동안 성당에 매일 갔었는데, 집이 시골이었기 때문에 한 시간 가량 걸어서 가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산을 넘어 성당에 가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는데도 이 수고로움이 끝나면 그렇게도 ‘궁금했던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실 수 있게 된다’는 설레임 때문에 신나게 교리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제병으로 성체를 모셨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생님께서 미리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에 모시기 전에 몸과 맘을 깨끗이 해야 하고, 공손하게 입 안에 넣어서는 씹지 말고 녹혀서 모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첫 영성체를 하던 날 조금은 실망되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맛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사를 서면서 또 한번 어리둥절했습니다. 성작에 담긴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한다고 했는데, 빨간 색으로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체를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은 1년 가까이 미사 참례를 할 수 없었던 군대에서입니다. 부대에 성당이 없어서 ‘오늘 부활절인데..’하며 지냈었습니다. 사단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가운데 오랫동안 성체 안에 하나 되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성체성사에 대한 신학을 배우면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체와 성혈이 얼마나 감사롭고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십 여명이 되는 젊은이들과 미사를 드릴 때는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드시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뜨거운 마음과 하나 된 마음이 생겨나곤 합니다.

하지만 역사 안에서 미사의 희생제사적 측면이 강조 되어서 인지 오늘날 우리의 미사는 너무도 경직되고 의식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약 400년 전부터 많은 이들이 실제적으로 이 성사의 중요성을 잊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신교도들이 성체를 순수한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에,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지나치게 강조하였고 이로 인해 다른 중요한 측면인 ‘식사, 먹고 마시는 행위’를 잊게 만들었습니다. 얀세니즘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성체를 먹는 대신 멀리서 그것을 찬미, 흠숭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먹고 마심으로써 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축성된 성체를 흠숭하는 신심으로 대치되었습니다(바라만 봐도 좋은 당신). 그래서 성체 거동, 성체 조배, 성체 강복 등이 영성체 대신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둘러싸고 빵을 나누던 그 의미 깊은 행위는 어느 정도 의식적인 행위로 변질되었습니다. “나누어 먹어라, 빵, 포도주, 너희 모두 먹고 마셔라” 이러한 것들은 지금 많이 사져버렸습니다.

우리가 ‘제사’라고 칭하고 있는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는 만찬 중에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빵과 포도주를 드는 식사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한없이 더 고귀한 것들, 즉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 희생되었다가 영광스럽게 된 당신의 몸과 피, 하느님과의 통교,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의 우리들의 상호 통교 등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먹고 마시기를 중단하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주는 힘이 없으면 아무리 건강한 영혼도 죽게 마련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우리의 자연적 삶을 지탱해 주듯이, 예수그리스도는 성체와 성혈을 통해 은총의 힘을 계속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신 영적 생명을 지탱해 주십니다.

요한 복음서에서도 “내 살은 참된 음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요한 6, 56)”라고 전해 줍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하는 이 식사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 줍니다. 홀로만의 식사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형제적 식사였습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찬양의 잔은 그리스도와 맺는 친교가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과 맺는 친교가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니, 우리는 여럿이지만 한 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빵을 나누기 때문입니다(1고린 10,16-17)’

이렇게 예수님의 몸을 통해 하나가 된 형제들은 나눔을 통해 식사를 완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나눔의 모습은 초대교회 공동체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떼고 신명나는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들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사도 2,44-47)” 오늘 복음에 5천명을 먹이고 남은 12광주리의 빵은 예수님께서 오늘의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해 남겨 두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주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 주시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살아계신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시켜줍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내려 주신 음식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금했던 최초의 음식물인 선악과가 하느님과 인간을 갈라 놓았지만, 그로말미암아 시작된 구원은 우리를 영원히 하느님과 결합시키는 성체와 성혈을 탄생시켰습니다.

인간은 자기가 먹는 그것이 됩니다. 비난과 꾸중을 먹는 사람은 자신 안에 갖히어 비난과 꾸중을 하는 사람이 되고, 사랑과 격려를 먹고 사는 사람은 사랑과 기쁨 속에 살게 됩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을 먹고 사는 사람은 걱정과 불안 속에 살게 되고,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사는 사람들은 사랑과 나눔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아들의 몸과 피로 변화되듯이, 빵과 포도주 같이 보잘 것 없는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로 변화 되어 갑니다.

그래서 훗날 주님께서 우리의 몸을 보고 “이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자주 성체를 영하고 그분과 하나가 되는 성체 성사의 삶을 살아갑시다.

그런데 이 성체성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분의 몸이 되기 위해서는 그분처럼 십자가 위에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하는 아픔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빵이 되기 위해서 밀알은 갈려져야 하고, 포도주가 되기 위해서 포도송이는 피를 흘리듯 눌려야 하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성체를 영하기 전에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피를 흘리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가 담긴 ‘잔’을 마시기 전에, 우리 역시 희생으로 ‘세상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피’를 흘려야함을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체를 분배할 때 분배자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말할 때 자신있게 ‘아멘’이라고 답합시다. “주님, 저는 당신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심을 참으로 믿습니다. 당신을 받아 모시는 제가 당신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당신의 몸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맘으로 주님과 하나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이 빵과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저희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며 당신처럼 변화되어 사랑의 삶, 발을 씻는 섬김의 삶, 나눔과 일치의 삶, 십자가를 감내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