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 강론 - 열처녀의 비유

박 안셀모 신부

미사 전

오늘처럼 가을비가 소리 없이 우리 맘에 내릴 때, 가끔씩 삶이 힘들어지고 지칠 때, 혹은 피정을 통해 우리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의 인생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라고 말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인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삶과 사람에 지쳐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영혼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과 죽음, 마지막 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여 주십니다.

전례력으로도 이번 주일에는 "열 처녀의 비유", 다음 주에는 "달란트의 비유", 그리고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에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들을 듣게 됩니다.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과 마지막 날에 대해 깊이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사를 드리기에 앞서 오늘 복음의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하늘나라의 혼인잔치를 위한 우리의 여정을 밝힐 기름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 이 기쁨의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깨어 기도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마지막 날 "나는 그대들을 모릅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도록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듯 살아온 죄스런 시간이 있었다면 먼저 주님께 자비를 청하도록 합시다.

강론

성소 담당자인 저는 수도원에 입회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곤 합니다.

"수도생활은 축복받은 삶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죠.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형제님 본인의 자발적인 응답이 있어야 하며 교회의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무도 이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먼저 형제님을 뽑아 주셨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구요. 나중에 수도원에 들어와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 가운데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이 생겨 갈등을 한다면 그때는 이것을 기억하세요. 수도생활은 궁극적으로 바로 나 자신이 하는 거란 겁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그리고 힘들게 하는 사건이나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성장시켜 주시기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며 아직 나의 그릇이 작다는 표시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나 공동체는 형제님이 하느님을 만나 참 기쁨을 누리도록 서로 도와주는 영적 동반자들입니다. 처음엔 그 도움이 힘겨움과 아픔으로 다가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처음 입회의 기쁨은 이내 사라지고 사막의 건조함과 단조로움이 우리를 괴롭히더라도, 때로는 자신의 약함으로 현실에 타협하며 주님 향한 길에 주저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라도 주님께로 향한 길을 걸어가는 것은 결국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의 몫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끝까지 항구하게 묵묵히 이 길을 충실히 걸어 주님께서 주시는 수도생활의 참 기쁨으로 건너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을 성소자들에게 해 주던 수도생활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수도생활만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 여정도 이와 같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그럼 무엇이 이해하기 힘들 대목이었는지 설명하면서 복음 말씀 안으로 들어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늦어지는 신랑을 마중 나가기 위해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들은 '신랑이 오신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는 외침을 듣고 그제 사 기름이 부족한 것을 알고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청합니다. 그런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어이없게도 쌀쌀맞게 거절합니다.

'나눔과 베품'이 정도(正道)라고 배운 우리에게는 상식 밖의 말입니다. 함께 가도 될 텐데 말입니다. 또한 늦게 사 기름을 마련해 혼인잔치에 도착한 어리석은 처녀들이 닫힌 문을 두드리며 "주님, 주님, 우리에게 열어주세요!" 라고 외치지만, 주님께서는 "나는 그대들을 모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에 익숙한 우리에게 너무도 냉정하게 비춰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비유는 앞서 말한 성소자들에게 들여 주는 얘기에서처럼 "자신의 수도생활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듯이,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단 한번 뿐이고 하느님을 향한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그분께로 향하는 나의 삶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바로 나의 몫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그대들을 모릅니다."라는 말씀 역시 그분의 모진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삶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일이며 마지막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하신다는 그분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느님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가는 일이며 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주어진 우리 삶의 길을 밝혀줄 기름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다가오실지 모르는 그분을 맞을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등불을 밝혀 줄 기름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주석가들은 기름의 의미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름을 믿음에 꼭 따라와야 할 선행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나오는 신념으로 해석했습니다. 어쩌면 이 기름은 우리의 항구한 사랑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인들에게 가서 돈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사랑이 우리의 모든 행동의 가치 기준이 될 때 그분 나라의 잔치 집으로 인도할 등불을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마음의 문은 닫히고 무관심하게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우린 살면서 이런 체험을 가끔씩 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랑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매순간을 의식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흔히들 오랜 신앙생활, 혹은 수도생활이 때때로 우리를 무감각하게 하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처럼 기름이 바닥나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많은 일에 쫓기어 기도하지 못하고, 자신의 아집과 욕망에 사로 잡혀 기도하면서도 마음을 그곳에 있지 못할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을 밝힐 기름이 바닥나게 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 인간은 완벽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을 탓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열 처녀 모두가 신랑이 늦어지자 잠에 빠져들었다는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잠은 우리의 일상을 상징합니다. 일상을 살면서 때로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분을 배반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하는 우리이지만, 주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심지어 나의 죄와 잘못을 통해서도 찾아오심을 의식하고 다시금 제자리를 찾아 기도와 사랑을 통해 기름을 준비하고 살아갈 때 주님 잔치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 안에서 주님을 의식하지 않고 밖의 일에만 분주하게 마음 쓰며 살 때 하느님 나라의 기쁨에 들어가기 위한 문이 닫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고 공동체를 위한 일인데 왜 그렇게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느냐고 한다 하더라도 주님은 주님과 우리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그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밖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영성도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으로만 향할 때는 중심을 잃게 됩니다. 수도 공동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를 찾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베네딕도 성인이 알려 주신 규칙의 정신에 따라 형제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본연의 모습을 끊임없이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장상과 수도원의 장상과 가정의 가장은 밖의 일보다는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각 구성원들이 기름을 잘 마련하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의 기쁨으로 들도록 슬기롭게 도움을 주어야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의 삶의 마지막이 잔치와 기쁨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바로 나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기름을 준비하며 신랑과 함께 춤추며 잔치 집으로 가는 여정 자체도 참으로 기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을 지금 만나지 못하면 나중에도 만날 수 없으니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지금 내 삶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한 사랑과 기도의 기름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그분을 갈망하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시편 작가와 함께 진심어린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하고 함께 싶습니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제 구원은 바로 당신이시니, 당신 날개 그늘 아래 저는 마냥 좋으니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