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주일 강론 - 가나 혼인잔치

                                   박 안셀모 신부

미사 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당신 피를 흘려 목숨을 바쳐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새로운 계약, 즉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과 우리가 약혼을 한 사이라면 신약에서는 하느님과 우리는 혼인을 한 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랑하는 하느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잔치를 가능하게 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듯이 우리를 당신의 피를 통해 찐한 사랑의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고자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한가지입니다.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말하는 대로 하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예수님께서 말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반성하며, 그분께서 마련하신 이 신비로운 혼인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갖출 수 있도록 부족한 우리 마음에 주님의 자비를 청합시다.

어린 시절, 저는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마법사 같은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적을 행하시는 마법사로 말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성모 기사회에 가입하여 성모님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가나혼인잔치 이야기는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실 수 있는 전구자라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고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서를 공부하면서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가 전해 주는 내용은 보다 더 심오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징적 표현을 좋아 하는 요한 복음 사가의 깊이 있는 메시지 전달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오늘 저에게 주어진 10여분의 시간동안, 함께 요한 복음 사가가 가나 혼인 잔치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고자 하는 놀랍고도 엄청난 메시지 속으로 들어 가 보도록 합시다. 그분이 말씀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할 때 우리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를 믿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 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 하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해 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먼저 오늘 복음의 핵심은 많은 능력을 지니신 마법사도, 전구자 마리아도 아닙니다. 가나 혼인 잔치 이야기의 핵심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전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 모두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심을 전해 주고자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써 구약의 계약을 넘어서는 새로운 계약을 맺으심을 미리 보여 주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나이 계약의 도식을 비교해보면 이것이 분명해 집니다. 구약의 핵심인 시나이 계약에서 모세는 야훼 하느님과 백성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마리아가 예수와 하인들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합니다.

시나이 계약에서는 율법이라는 선물을 얻게 되지만 가나 혼인잔치에서는 메시아적 포도주를 얻게 됩니다. 메시아적 포도주란 말은 최후 만찬 때에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말이며, 곧 예수님의 피를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계약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이 정결례에 사용하기 위해 돌로 만든 물독 6개, 완전수 7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이 6개의 물독은 구약의 미완성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행하신 표징은 바로 구약의 물에서 신약의 포도주로 변화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백성들의 응답은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당부한 말과 동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19,8과 24, 37에서 “무엇이든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여기에서는 마리아의 입을 통해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말하는 대로 하시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구약을 완성하는 새로운 계약을 위해 파견된 분이시며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암시 하고 있는 것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인이여”라고 부르는 것에서 구약과의 연관성이 더욱 명백해 집니다. 어머니를 “여인이여”라고 부르는 아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여인이여”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지칭하는 의미이며, 성모 마리아를 이렇게 부른 것은 마리아께서 구약과 신약의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새로운 때가 시작되었음을 마리아를 통해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인인 이스라엘, 호세아서 2장 21절에서 “너와 나는 약혼한 사이 우리 사이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있듯이 하느님과 약혼한 이스라엘이 오늘 가나 혼인잔치에서 혼인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이 술로 변하듯, 미완성의 시대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변화의 시대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 1독서에서도 “씩씩한 젊은이가 깨끗한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듯,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아내로 맞으신다.”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받는 아내인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과 우리는 혼인한 사이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혼인하여 함께 살아가듯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감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아내가 되었습니다. 혼인의 징표는 흔히 반지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우리 혼인의 징표는 예수님의 피 입니다. 이 하느님 사랑의 징표인 예수님의 피는 오늘 복음에서 물이 변한 포도주로 상징화됩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의 물을 신약의 포도주로 변화시키듯이 물과 같은 우리를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시고자 하십니다. 사랑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듯한 당신의 피조물을 한결같이 그리고 피 흘려 사랑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의 성모 마리아의 입을 통해 우리 역시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하길 원하십니다.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말하는 대로 하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성서를 통해, 사람을 통해, 사건을 통해,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나처럼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린 그분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의심하며 빈 독에 물을 채우는 노력마저도 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만약 시중꾼들이 독에 물을 채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세상의 논리로 독에 물을 채우는 일을 헛수고라도 생각하고 행하지 않았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포기하고 남을 돕는 일, 나를 힘들게 하는 이를 용서하는 일,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지만 어려움 중에 있는 이를 돕는 것, 가난하고 생활 능력이 없는 이들을 돕는 일, 자신의 창창한 미래를 접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도자로 살겠다고 수도원에 들어오는 일 등등 세상의 잣대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믿음으로 행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기 모인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도록 세상과 우리 안의 어둠 가득한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분이 명하십니다. “물독에 물을 채우게!”

주님 저희의 욕심이 가득한 항아리를 비우고 그곳에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물을 채우게 하소서. 주님 무디어져 아무런 맛이 없는 물과 같은 우리의 내면을 일깨워 주시어 저희가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당신 닮은 사랑을 통해 저희가 당신의 사랑받는 아내가 되게 하소서. “당신이 무엇이든지 저희들에게 말하는 대로 하게 하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