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 강론 : 내가 만난 하느님

박 안셀모 신부

미사 전

“오늘 성경 말씀이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복음의 핵심 구절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유와 해방이 찾아왔습니다. 은총의 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산다고 말은 하는데 왜 우리 삶엔 평화 보단 걱정이, 기쁨보다는 불안이 더 많은 것일까요?

지금 주님과 함께 미사를 거행하는 이 순간 행복하지 않다면 자신의 행복의 관점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참다운 해방이 무엇인지 깨달아 가야 할 것입니다.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기에 앞서 나의 걱정과 불안과 욕심을 주님께 내어 맡기고 자비를 청하도록 합시다.

[복음]

실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데 손을 대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하고 말씀의 시종이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대로 엮은 것입니다. 저 역시 모든 일을 그 시초에서부터 더듬어 면밀히 알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존귀하신 데오필로님, 당신을 위해서 순서대로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읽어 보시고 당신이 이미 배우신 말씀들이 확실하다는 것을 납득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영의 능력을 지니시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에 관한 소문이 인근 온 지방에 두루 퍼졌다. 그분은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찬양을 받으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자라난 나자렛으로 가셔서 당신 습관대로 안식일에 회당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시었다. 이사야 예언자의 책이 당신에게 건네지자 그분은 그 책을 펴시고 이렇게 적혀 있는 대목을 찾아 읽으셨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과연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도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소경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로다." 그리고 책을 접어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께로 쏠렸다. 그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기 시작하였다.

[강론]

오늘 복음에서 루가는 광야에서의 유혹을 물리치신 다음, 갈릴레아를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당신이 자란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서의 한 대목을 봉독하시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사명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시듯이 이사야 예언자의 책이 당신에게 건네지자 그분은 그 책을 펴시고 이렇게 적혀 있는 대목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과연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도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셨으니,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소경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로다." 그리자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께로 쏠렸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여러분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이사야서의 말씀을 풀이해 주십니다.

복음 선포의 첫 시작에 마르꼬나 마태오는 “하느님 나라”를 강조한 반면, 루가 복음 사가는 “예수님 자신”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시작되었고, 그 나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가난한 이들이 기쁜 소식을 듣고, 묶이고 억눌린 이들이 풀려나고, 소경들이 눈을 뜨는 나라이기에 이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신학생 시절,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시고 그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고 하셨는데, 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불안, 고통과 아픔 가운데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에서의 해방과 자유가 아직 내 안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며, 아직 예수님을 통해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가난하고, 내가 억눌려 있고 내가 눈 먼 소경이기에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 하느님 나라를 산다고 착각한다면 절대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해방과 구원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나라로 가는 길이 환하게 열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이기심과 욕심과 죄의 사슬이 우리를 얽어매고 있어 그 나라를 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예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그 길을 통해 이런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여정입니다. 그분 나라를 제대로 보기 위해 눈을 뜨고, 그분 나라를 살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온전히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각자는 일상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새롭게 만나고 체험하며 그분 나라의 시민으로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각자가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과 과정이 모두 다르겠지만, 제가 처음으로 하느님을 가깝게 느낀 것은 하느님을 “아버지” 느끼면서 부터입니다. 그전까지는 그분은 저와는 아주 멀리 계신 분이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안셀모’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서, 72일만에 세례를 받고 신심 깊으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하느님은 그저 저와는 크게 상관없는 분, 아니 오히려 저를 귀찮게 하는 분이셨습니다. 때가 되면 고해소에 가야하고, 친구와 놀고 싶고 만화 영화도 보고 싶은데 미사에 가야 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하느님께서는 친구들의 모습으로 저에게 다가 오셨습니다. 친구들이 좋아서 성당에 다녔으니깐요! 그러면서 점차 성당에 다니는 것을 좋아 하게 되었고 늘 저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친 아버지처럼 주님은 저에게 ‘아버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이라는 생각이 저를 수도원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수도원에서는 주님은 저를 너무나도 사랑해 주는 형제들의 모습으로 다가오셨고, 때로는 아픔과 시련, 좌절과 고통을 통해 저에게 당신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습니다. 또한 수도원을 찾아오는 젊은이들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하느님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저의 무력함”을 통해서입니다. ‘그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 ‘그분께 온전히 의탁할 수밖에 없는 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하시면서 하느님은 또 다시 저를 사로잡으십니다. 복음과 수도생활에 대해 설명을 하고,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의 마음을 닮도록 가르치면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구원을 깨닫고 새롭게 살기를 당부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작 ‘제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고, 자기 자신과 일과 사람에 얽매여 있는 주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새롭게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샌 기운이 팔팔하던 배추나 무우가 소금에 절여진 후 힘이 다 빠져야 양념과 어울러져 새로운 존재인 김치가 되듯이 그렇게 수도원 안에서 기도와 일의 소금으로 절여지고 사랑의 양념을 듬뿍 담은 총각김치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힘을 다 빼 놓으시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혼자서 뭘 해보겠다는 교만한 우리 자신이 힘을 다 빼야 자신이 먼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주님께서 주신 참 자유 안으로 들어가는 듯합니다. 스스로 주님 앞에 겸손해 질 때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다운 해방과 자유를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남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먼저 변화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 주셨고 지금도 주고 계신 해방의 기쁨을 스스로 먼저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을 뜨고 제 뒤에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 벽화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통해 시간과 공간, 아집과 죄, 죽음에 묶여 있는 우리를 풀어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을 버리고 그분께 의탁하며, 그분의 마음을 닮고 그분과 같은 생각으로 그분과 함께 살아갈 때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부활의 삶, 은총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밀려오고 세상은 나를 통해 그분의 사랑을 느끼며 참된 하느님 나라로 승화되어 갈 것입니다. 아무리 성서를 많이 읽고 쓰고 하더라도 그분의 뜻을 먼저 찾고, 오늘 내가 그분의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면 은혜로운 때, 진정한 자유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지금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남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에 얽매여 있습니까? 죄와 악습에 얽매여 있습니까? 돈과 명예에 얽매여 있습니까? 상처와 사람에 얽매여 있습니까?

주님, 저희는 당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부질없는 아픔들과 이젠 이별하고 주님의 은혜로운 때가 내 안에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겸손한 맘으로, 말없이 사랑하며 당신께 저희의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 드리며, 하루 하루 당신을 선택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