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28주일 강론 : 한가지 모자라는 것

박 안셀모 신부

미사 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미 참된 행복의 삶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 합니다. 그분처럼 가난하고, 그분처럼 자비롭고, 그분처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서는 구원입니다.

하지만 나약한 우리는 예수님 따르는 길에 마주오는 걸림돌에 너무도 자주 걸려 넘어집니다. 재물과 자기 자신에 대한 욕심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포기하지 못하게 유혹합니다.

신비롭게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에게 새로운 말씀과 양식을 주시는 주님의 크신 사랑의 만찬을 거행하기에 앞서, 주님 따르는 이 길에 우리 모두 안에 있는 “한 가지 모자라는 것”들이 무엇이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딛고 일어설 수 있는지 묵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합시다.

강론

방금 들은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흔히 우리는 이 복음을 재물에 집착할 때 하느님 나라에 들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오늘의 복음을 이해한다면 현실과 거리가 먼 말씀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데 그것이 현실상 가능한가? 그리고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힘들다면 지금 이렇게 애써 돈을 모으는 일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주님을 따르면 현세에서도 복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지금 살아가는 형편이 말이 아닌데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죽고 난 후의 내세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늘 반복되는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삶을 당연하듯이 받아들이며 살게 되기도 합니다. 성당 문을 나가면 또 돈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생각을 주시기 위해 오늘 복음을 들려 주셨다면 이것은 분명 기쁜 소식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천천히 오늘 복음을 읽고 묵상해 보면 단순히 ‘부자들은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며,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 이들은 주님의 많은 상급을 받는다. 그래서 재물에 집착하지 말라’라는 내용 이상의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이 되고 우리 삶을 변화시켜 주는 살아있는 말씀이 되도록 함께 복음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구원관을 넘어선 새로운 구원관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서 제자 된 우리가 어떤 몫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부자 청년이 예수께 다가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계명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청년은 이 모든 율법을 다 잘 지키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온 마음으로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율법 속에 담겨 있는 사랑의 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 청년의 모습은 당대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계명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해 청년이 물었지만 예수님의 답변에는 영원한 생명이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은 하느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영원한 생명의 시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구원의 시작이요,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과 동거동락하며 그분과 운명을 같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또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함께 나눔을 통한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구원관은 율법에 대한 충실이었으며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민족에 대한 특별한 선택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부자 청년도 자기 자신의 영원한 생명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매달렸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미 구원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율법을 통한 구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구원관인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에게 현세에서부터 주어지는 백배의 상급은 바로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 예수님 자신인 것입니다. 새로운 집, 새로운 형제, 자매, 부모, 새로운 자녀들과 새로운 땅, 이 모두는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구원된 이들을 위한 새로운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전해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렇게 새로운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 제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한 가지가 모자랍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 위에 그 무엇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많이 가지려는 마음도, 높아지려는 마음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알려지고 싶어 하는 마음도, 내 뜻을 관철시키려는 마음도 하느님 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들이 있습니다.” 하느님 위로 올라가려는 그 무엇이 우리를 자주 지배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언급하신 현세의 “박해”라는 말이 이를 암시합니다. “박해”는 주님을 섬기도록 방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외부의 강압일 수도 있지만 우리 내부의 유혹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있는 부족한 “한 가지”를 딛고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부자 청년에게는 재물이 ‘부족한 한 가지’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데 있어 ‘부족한 한 가지’ 다시 말해 걸림돌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걸림돌은 치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가까이 와서 우리를 유혹하고 지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를 치우고 나면 다른 걸림돌이 우리를 마중 나옵니다. 하지만 이 걸림돌을 통해 더욱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다른 말로 우리는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부족한 한 가지는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는 초대이자 선물이며 겸손으로 인도해 줍니다. 우리를 정화시켜 주고 중심을 찾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을 통해 구원 받은 우리 삶의 자세 가운데 하나는 ‘나눔의 정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하신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 사람들에게 주시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현세의 재물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부유함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재물은 나눔을 위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물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인간을 얽매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십니다. 제자들이 말씀을 듣고 놀라자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무슨 일이나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씀하십니다. 이는 부자가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그 부자를 회개시켜 나눌 수 있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나눌 수 있는 것이 재물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재능, 기술, 지식, 좋은 성격, 넉넉한 마음, 시간, 따뜻한 미소 등 무수히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기를 권고하십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써 우리가 살아야 하는 또 다른 방법 중의 하나는 “포기”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유라 주어져 있기에 우리 일상은 수많은 선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재물 가운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이 더 좋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현실 앞에 자주 타협하게 됩니다. 포기하기를 힘들어합니다. 포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의 경험은 그것이 바로 “사랑”이란 것을 알려줍니다.

주님을 그 무엇에 앞서 사랑할 때 우리는 가진 재물을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을 통한 적극적인 포기는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참다운 백성으로 성장시켜 줍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운명에 동참하고자 그분의 제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삶 자체가 이미 행복이요 기쁨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자꾸만 인간적인 행복을 바라봅니다. 오늘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중심을 새롭게 되새기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며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상에서 예수님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잠시 침묵 가운데,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각자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이 걸림돌을 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은총을 간구합시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고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한 가지가 모자랍니다.”

지난 종신 서원자 연례 피정에서 크리스찬 아빠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걸림돌은 걸려 넘어지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가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