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5주일 강론 - 우리 마음의 나병

박 안셀모 신부

미사전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연중 제 5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십니다. 살이 문드러진 나병환자, 죄인이라고 취급받으며 사람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소외된 그 나병환자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바로 치유였습니다. 그에게 새살이 돋아 깨끗하여 진 것은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엄한 예수님의 명을 어기고 사람들에게 쫓아가 그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도 살이 뭉크러지는 나병 같은 병이 하나씩 있습니다. 이 미사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나병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시길 청하며, 자신의 변화를 사람들에게 떠벌리기 보다는 주님께 먼저 감사를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지난 10일부터 2박 3일간 수도생활 체험학교에 참석한 이들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자신과 이웃의 마음속에 있는 나병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이 미사 중에 함께 기도합시다.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은 마침 제가 미사 당번이라 마치 수도생활 체험학교 파견 미사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전국에서 모여온 젊은이들이 "하늘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수도자들과 똑같이 기도하고 일하며 2박 3일을 함께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수도생활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하고, 신앙심을 굳건히 하고자, 그리고 마음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 받아 자신의 삶의 새롭게 하고자 이렇게 수도원에 모여 왔다는 것만으로도 하느님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됩니다.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분업화로 말미암아 생겨난 학교와 직장 등과 같은 도시의 거대 구조 속에서 마치 부품과도 같은 삶을 살면서,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참 모습을 찾고자 하는 갈망 속에서 소외와 아노미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나병을 앓고 있는 거죠! 겉으로는 멀쩡하고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지나친 부모의 관심, 혹은 가정불화로 생겨난 무관심, 성적으로 매겨지는 또 다른 계급과 경쟁이 가득한 학교에서 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청소년들은 쉽게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게 되고, 합리적인 사고를 넘어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설령 베풀고 나누며 희생하는 것이 머리로는 좋다는 것을 안다 할지라고, 삶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수도생활 체험학교에 참석한 이들은 그나마 무엇인가를 찾고자 갈망하고 영적인 삶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이들이라고 보여 집니다. 세상이라는 거대 구조 속에서 참된 자신을 찾고자 하고, 문드러진 마음을 깨끗이 하고자 모인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이 자리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우리가 나약하고 아픈, 하느님 앞에 한 없이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자비를 청하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사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2박 3일의 마지막 날에 와 있는 우리는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처럼 예수님의 힘으로 마음의 나병을 깨끗하게 치유 받고 그분의 권고를 듣고 있는 단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를 내보내며 엄히 경고하셨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다만, 가서 제관에게 몸을 보이고, 모세가 지시한 것들을 갖다 바쳐 깨끗해졌다는 증거가 되게 하시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가장 먼저 의문이 생겼던 것은 바로 이 대목이기도 합니다. 왜 말하지 말하고 하셨고, 제관에게 몸을 보이고 예물을 바치라고 하셨을까? 물론 오늘 제1독서에서 들었듯이 레위기에 나오는 유대의 전통에 따르는 지시이지만, 뒤 이어 나오는 구절에서 치유된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명을 어기고 이 이야기를 널리 전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일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고 외딴 곳에 머물게 되었다는 구절과 연관시켜 보면 복음사가가 전해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좀 더 다른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일까요? 왜 말하지 말라고 하셨고, 나병환자는 그 엄한 경고를 듣고서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을까요? 예수님을 체험하고 나면 너무나 기뻐서 그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한 걸까요?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나병환자에게 원하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육신의 치유와 영혼의 구원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요?

저의 이런 의문은 "내가 바로 나병환자다."라고 생각하면서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병환자는 평범한 우리 자신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겉은 멀쩡하나 속은 문드러져 있는 우리가 간절히 원할 때 예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 오셔서 치유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간절히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거나 영적 감흥을 받은 것도 그 때뿐, 사람에게서 위안을 찾고 기쁨을 나누지 진정으로 하느님께 먼저 감사드릴 줄 모릅니다. 나병 때문에 사람들 곁에 갈 수 없어 별시와 소외받았던 자신의 신세만을 생각하고 주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가가 자신을 증명해 보였던 것입니다. "봐라 이제 나는, 너희들이 죄인이라고 별시 하던 나는 이제 너희와 같은 정상인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나병환자의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에 보이는 나병의 치유에 기뻐하고 영혼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는 환자였기 때문에, 아직 주님을 기적을 베푸는 분, 마법사와 같은 분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법도에 따라 주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이제는 참다운 주님의 사랑으로 깨끗하게 영혼을 씻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나병환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관심을 갖는 인간의 나약함을 아셨는지 그 나병환자를 질책하지 않으시고 외딴 곳으로 물러가십니다.

우리도 자주 눈에 보이는 주님의 은혜를 찾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땐 주님을 원망하고, 또 이루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 버리고 주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먼저 육신의 나병이 치유되는 것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먼저 찾고 영적으로 깨끗하게 되어 그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참된 치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 주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활동하실 없게 됩니다. 외딴 곳으로 물러가시게 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주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마음의 나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의 나병환자를 넘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진정한 영광을 되돌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선 나의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믿고 다가오는 나병환자에게 측은한 마음을 가지셨던 예수님께서는 육신에 새살이 돋는 것만이 아니라 영혼의 새살이 돋기를 바라셨듯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과 사람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기쁨과 고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의 나병을 치유하는 작은 예수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제 저는 수도생활 체험학교 참석자들과 금남 농장에서 창고를 청소했습니다. 처음 볼 때는 흙덩이와 먼지들이 가라앉아 있어 금방 쓸면 끝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커다란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나가자 뿌옇게 먼지가 창고를 온통 뒤덮었고, 숨쉬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창고가 어쩌면 우리의 마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도 약하고 부족합니다. 실수하고 쓰러지고,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으면서도 자꾸만 자신만을 생각하는 먼지투성이 창고입니다. 쓸어도 쓸어도 먼지가 쌓이는 그런 창고 같은 우리이지만 간절히 원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먼지를 깨끗이 치워주십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의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주님의 빗자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희가 저희의 병든 곳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그 병을 낫게 해 주십사하고 당신께 간절히 청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감사와 찬양의 예물을 드리며 당신의 충실한 도구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희가 당신의 빗자루가 되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게 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