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5주일 강론(다해)

박 안셀모 신부 

[미사 전]

오늘은 연중 제25주일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리스도이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은 세상의 논리를 넘어서는 수난과 부활의 길이라는 첫 번째 예고를 들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수난 예고와 함께 우리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걷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그 가르침은 섬김과 낮춤, 보잘 것 없고 약한 이들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사랑의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정치적 메시아를 꿈꾸며 높은 자리를 탐하는 세상의 논리에 젖어 있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삶의 질서와 가치를 하나 둘 정성스럽게 가르쳐 주십니다.

미사를 거행하기에 앞서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 나라의 참된 가치를 가르쳐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의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진정으로 주님을 위해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며 살고 있는 지, 혹시 우리 안에 나를 위한 섬김과 봉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되돌아보며 주님의 자비를 청하도록 합시다.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도 많은 분들이 이렇게 수도원 전례에 참석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여러분들 모두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이 수도원 정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마도 정원에 가득한 아름다운 향기였을 겁니다.)

(요즈음 수도원 정원에는 아름다운 향기가 가득합니다)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나지?"하며 쫓아가다보면 수도원 정원에 있는 황금빛 작은 꽃을 가진 큼지막한 나무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나무 이름은 황금목서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온 정원에 펴져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그런 가을입니다. 아름다운 향기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어쩌면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수도원을 찾아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부족하지만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수도자의 삶의 향기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 수도자들은 예수님의 삶의 향기를 쫓아 모여,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향기를 내며 살고자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같은 향기를 내며 사다는 것이 살면 살수록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도 자신들의 가치관을 넘어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향기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이를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누가 더 높으냐는 문제를 가지고 다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질서와 가치를 전해 주고자 하셨으나, 제자들이 이것을 알아듣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마치 그토록 오랫동안 주님 곁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머리로만 알고 몸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처럼 말입니다.

지난 주 복음의 첫 번째 수난 예고에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혼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두 번째 수난 예고에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을 다시 기다려 주십니다. 길에서 누가 높으냐는 문제로 다투는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질책하지 않으시고, 집에 들어와서 차분하게 둘러 앉아 당신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 말해 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들을 타이르시며 앞으로 하느님 나라에서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일러 주십니다. 여기서도 우리와는 다른 예수님의 섬세한 배려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는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화내고 분노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놓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이 가운데서 말째가 되어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다른 삶의 가치 기준입니다. 섬기고 낮아지라니!!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줄 임금이 되시길 바랬던 스승이 죽는다고 하고, 또 임금이 되면 한 자리 차지하기를 바라고 있었던 제자들에게 말째가 되라니!!

그리고 이어서 예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에 세우고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린이는 마태오 복음 18장에 나오는 믿음과 전적인 신뢰를 가진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나약하고 변덕스럽고 미숙하며 자신만을 생각하는 어린이의 부정적인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섬기고 낮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를 감싸 안듯이 상대의 약함과 상처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자신의 온 존재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머리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당신께서 그렇게 껴안아주셨듯이 자신의 온 존재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껴안으라고 하십니다. 단순히 자신을 종으로 여기며 비하하여 허드렛일을 하는 것,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판단하는 것, 이런 것은 진정한 섬김이 아니라 열등의식을 감추기 위한 수단과 자기 위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어린아이를 끌어안아 주시듯이 진정한 섬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십자가를 통해 자신의 전 존재로 우리 인류를 끌어안음으로써 그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말씀이요, 제자들이 가졌던 기존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엎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내 주변에 나를 배신하고, 나를 미워하고, 나에게 욕하고,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말처럼 쉽게 끌어안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때로는 가장 가깝다는 부부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형제 • 자매 사이, 교우 사이에도 그렇게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의 약함을 껴안지 못하며 싸우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어쩌면 그것이 그토록 힘든 일이었기에 제자들도 스승이 실제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한 후에야 이 말씀을 알아듣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인 우리에게 세상과 다른 삶의 가치를 전해 주시고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일러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실패한 것 같지만 주님의 뜻 안에서 주님께 순종하였을 때, 오히려 그것은 우리를 다시 살리는 발판이 됩니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연약한 사람을 돕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껴안으며 용서할 때 사람들 눈에는 바보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향기가 됩니다.

물론 오늘 제1독서에서처럼 악한 기운이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면서 뇌까립니다. 모욕과 고통으로 우리의 인내력을 쉼 없이 시험합니다. "그래 남들처럼 살아. 손해 볼 짓을 왜 하는 거야! 저 자식이 건방지게 나를 뭘로 알고! 나 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 사람을 결코 용서할 수 없어! 다시는 안 본다. 내가 피하고 말지 뭐"라고 마음먹게 만듭니다.

이런 마음은 오늘 제2독서와도 연결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논리로 욕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할 때, 평화는 깨어지고 다툼이 생겨납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런 경우 기도해도 얻어지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욕정을 채우는데 쓰려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당신의 삶으로 가르쳐 주신 지혜는 '너를 온전히 사랑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나을 완성'하는 섬김의 지혜입니다. 나를 모욕하는 사람을 가슴으로 안고, 욕심 없이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왜 서로 섬기지 못하고, 다투고 싸우며 원망과 불평, 미움과 불신으로 마음의 평화를 잃으며 살 때가 더 많은 걸까요! 사람들 때문에 괴롭고, 왜 이리도 마음이 분주하고 답답한지요? 우리 자신의 삶이 아름다운 향기가 되기를 바라기 전에 그저 고약한 냄새라도 풍기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면 우리가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건강에 노예가 되어, 사람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사상에 노예가 되어, 돈에 노예가 되어, 명예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열심하다는 사람들 마음 안에는 주님을 섬기는 마음과 사람을 섬기는 마음 위에 또 다른 그 무엇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진정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루 하루 주님 안에서 묵묵히 살아가시는 선배 수사님들의 환한 미소를 보면서 그 안에 섬김의 예수님을 발견하곤 합니다. 형제들이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며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서 어린이를 감싸 안으시는 예수님을 만나곤 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나'가 가득할 때에는 썩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이 가득할 때에 주님의 향기가 나를 통해 세상에 퍼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있도록 날마다 그분을 마음에 두고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방식을 배워 나가도록 합시다.

황금 목서가 가을 정원에 향기를 내기 위해서 뜨거운 여름을 견디어 냈듯이, 연로하신 수도자의 삶에서 나는 향기가 일생의 정진에서 묻어나는 열매이듯이, 다른 사람의 아픔과 실수, 상처와 죄를 용서하는 이에게서 나는 향기가 부단한 기도와 자기 성찰을 통한 은총이듯이, 그렇게 우리도 우리 각자의 삶에 예수님의 아름다운 향기가 스며들 수 있도록 오늘도 정진합시다.

주님, 저희가 당신의 마음으로 당신처럼 살게 하소서.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