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강론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대림 제1주일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4주간 동안 사천년을 고대하던 메시아의 오심과 마지막날 우리에게 재림하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긴 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시어 오셨고 장차 그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엄청난 사건을 준비하기 위한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이 대림 시기는 비단 4주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전체에 걸쳐서 해야 할 일은 주님처럼 ‘사랑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께서 내 마음 안에 진정으로 오셔서 우리 각자가 사랑으로 변화되어 가기는 대림시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기에 앞서 지금 내 마음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지 잠시 반성하며 주님의 자비를 청하도록 합시다.

대림 시기-우리가 ‘사랑’이 되어가는 시기

장수 씨의 아내는 삼수한 아들이 복수지원한 대학에 모두 낙방을 하자 병이 나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아내도 기력을 완전히 잃었는지 작년처럼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느니 다시 한 번 해 보자느니 하는 소리도 않고 이불을 쓰고 누워 있기만 했습니다.

“내 늘 말하지만 당신도 이 기회에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나 하라구. 사람이 꼭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사흘 째 되던 날 아침 장수씨가 어설프게 위로의 말을 던지자, 아내는 이불을 들치고 일어나 앉아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대로 마음을 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유?” 장수 씨는 갑자기 말문이 꽉 막혔습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비우는 건지 장수씨가 그 방법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책방에 한번 가봐. 마음을 비우는 법이라든가, 살아가는 지혜라든가 뭐 그런 거 사다 읽어봐.” 어물어물 장수 씨는 헛기침을 하며 출근을 하고는 자기가 한 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퇴근해 보니 아내는 책을 수북이 한구석에 쌓아준 채 눈에 힘을 주고 앉아, 읽고 있는 게 아닙니까! 제목도 어마어마한 책들이었습니다.

<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 <잠에서 깨어나듯 삶에서 깨어나라>, <초월의 길, 완성의 길>

제목을 훑어보던 장수씨는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책 읽는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나 왔어. 저녁 안줘?”

그러자 아내는 “참으로 자유로운 이는 육체의 욕망에서 멀어지는 법이에요.”하고 말하면서 남편을 흘낏 보고는 다시 책에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장수씨는 평소와 사뭇 다른 아내의 말에 놀라 가만히 손가락 하나를 들어 아내의 눈 앞에서 움직여 보았습니다. 아내의 두 눈이 깜박거렸습니다.

“당신 지금 농담하고 있는 거야? 나 배고프다구.”

아내는 남편이 하찮게 보였는지 “손가락 저리 치우세요. 내게는 오직 더 맑은 눈이 필요할 뿐이에요.”

장수 씨는 한숨을 푹 쉬고 궁시랑 대며 혼자 라면을 끓여 아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니 엄마 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풀 죽은 얼굴의 아들은 “아뇨. 아버지. 아까 낮에 그러시는데 엄마는 이제 대학 같은 헛된 욕망을 버리고, 성자가 되는 연습을 하기로 하셨대요. 저더러도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재요.”

그날부터 아내는 인도 성자들의 성스러운 말들을 집안 곳곳에 써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터억~ 앉으면 바로 눈높이에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삶은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신비이다. 그대여 그렇지 않은가? 오쇼 라즈니쉬.”

장수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직장 스트레스에다 변비까지 겹치는 날이면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이놈의 삶에 신비스런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원한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 앞에 서면 거기에는 이런 쪽지가 붙여 있었습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라.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는 말라 - 바바 하리다스.”

된장국에 김치 하나 뿐인 밥상에서 장수 씨는 쪽지를 또 하나 발견했습니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 산트 타카르 씽.”

며칠 후 성자의 말씀들에 푹빠져 있던 아내는 마침내 장수씨에게 최후통첩을 해 왔습니다.

“대학도 필요 없어요. 이제 곧 저는 아들하고 구도의 길을 가기 위해 인도로 떠나겠어요.”

장수씨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뭘 어쩌겠다구? 나는 어떡하구?”

장수씨는 자신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가방만 꾸리고 있는 아내에게 소리쳤습니다.

“그럼 나도 데리고 가.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다구. 나도 초월하고 싶다구.” 그러자 아내는 침착한 어조로 “그런 소망을 스스로 바람처럼 마음속에서 불어와야 해요. 이런 상황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직 헛된 욕망의 소리에요. 참된 자기 자신에게 귀를 귀울여 봐요.”

그런데 아내가 성자처럼 차분하게 말하고 있을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마음 내키지 않게 전화를 받던 아내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장수씨는 이 돌연한 사태에 무슨 이변인가 하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예 그럼요. 가구 말구요. 그럼요. 물론이지요. 지금 당장 가구 말구요.”

장수씨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인도 직속 교주가 전화라도 건 것일까. 이 갑작스러운 감격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내는 전화를 끊자마자 고래 고래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 쳤습니다.

“아이고 합격했단다. 추가 합격했단다. 장하다 내 아들! 가자! 얼른 가자.”

이것은 또 무슨 소린가! 또 한번 놀란 남편이 의아스럽게 물었습니다.

“대체 어딜 가려는 거야?”

아내는 언제 꺼내 들었는지 비행기표 두 장을 장수씨 눈 앞에서 흔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가긴 어딜 가겠수, 이양반아. 얼른 가서 비행기표 물려서 입학금 내구 와야지.”

“인도는? 구도의 길을 간다며!” “대학에 합격했는데, 이제 그런 건 필요 없어요!!”

(위의 이야기는 유애령의 숲으로 가는 사람들을 재편집 한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너무 재미있어 혼자서 신나게 웃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장수씨와 그 아내의 모습에서 순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 그러면서도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애처러우면서도 공감이 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이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웃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장수씨의 아내와 우리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장수씨 아내의 태도 속에는 부끄러운 우리 내면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열성을 다해 찾고 거룩한 말들, 봉사활동과 여러 가지 교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나를 위함’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자가 되었다가 현실의 이익이나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쉽게 교회를 떠납니다.

수도생활의 길에 들어선 이들도 적나라한 자신의 내면과의 싸움을 통해 그 안에서 온전히 주님께 자신을 넘기는 번데기와 같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이내 사람들과 자신에게 실망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장수씨의 아내에게는 아들의 대학 합격이 전부였고, 종교는 단지 잠시 괴로움을 잊게 하는 위로의 도구였을 뿐이었습니다. 전적으로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 풋열성이었던 거죠!

오늘날의 많은 신앙인들도 믿음과 사랑의 행위조차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내면의 만족을 찾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진정으로 살아있는 신앙,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신앙, 진정으로 깨어 사랑하며 사는 삶을 사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타성에 젖어 어제와 오늘이 큰 의미가 없고, 대림절과 사순절, 성탄과 부활이 지나가는 축제에 불과하고, 그저 건강하게 지내는 것, 자기의 영역을 침해 받지 않는 것, 거룩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 것, 일 적게 하고 좀 쉬고 싶은 것, TV드라마나 스포츠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거룩함은 단순히 자신의 안위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대접받기를 바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말로 열심히 하면서 스스로 그러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말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대림절을 시작하며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가 대림절은 잘 보내는 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기다림의 시기인 대림절에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단순히 성탄 장식을 하며 들뜬 분위기에 젖어 지내는 것이 대림절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죠!

대림절은 주님이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몸소 피조물이 되신 주님의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사랑 때문에 오시는 분이기에 그분을 깨어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랑이신 주님처럼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 결국 지금 이 순간 사랑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사랑을 실천하는 그 순간이 바로 깨어 기다린 이가 주님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진정한 성탄을 맞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갈라진 관계의 회복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과의 관계를 용서와 화해를 통해 새롭게 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집착하고 있는 것들, 나쁜 습관에 젖어 있는 것들을 정화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무한한 사랑의 샘이신 그분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분 없이 하는 사랑은 결국 자신의 허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은 현실의 위기 앞에 쉽게 타협하고 포기하고 마는 사랑이 되고 맙니다. 장수씨의 아내처럼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모습이 되고 맙니다.

오늘 독서와 응송에서 ‘이제, 그만 아버지의 집으로 가자’고 계속해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2독서의 말씀처럼 구원의 때가 가까웠으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 예수 그리스도를 입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장수씨 아내의 내면에 담겨있는 아들 대학의 합격은 우리 마음 저 밑바닥에 있는 이기적인 마음을 상징합니다.

이제 그 마음조차 주님께 내어드리고, 예수님의 마음,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가는 여정을 시작할 때가 된 것입니다.

작년에도 우리는 대림절을 보냈습니다. 내년에도 보낼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작년에도 변화되지 않았고, 내년에도 변화되지 못할 자신을 상상해 보면 답답해 옵니다. 그래서 지금 부터라도 변화의 삶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진솔한 마음으로 주님 곁에서 기도드리고, 마음을 열어 미운 사람을 받아들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그렇게 순박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 이미 우리는 아버지의 집에 가까웠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지도의 이정표는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아버지는 우리가 기다리는 것보다 더 많이 우리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