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 강론>>

쓸모없는 종, 그러나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자녀인 우리

진 토마스 신부님

방금 복음을 들으시고 그 소감이 어떠십니까? 먼저 제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이 복음 말씀을 듣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이 과연 말 그대로 기쁜 소식(福音)인지 다시금 물어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 부분은 믿음에 대한 예수의말씀이고, 두 번째 부분은 쓸모없는 종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두 부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첫 번째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하더라도 복종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여러 번, 여러 가지 주해서를 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해석을 볼 수 없었습니다). 실상 제자들도 겨자씨만한 믿음을 갖지 못했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두 번째 부분의 쓸모없는 종에 대한 비유는 그보다 쉽게 알아들을 수 있지만, 저에게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하시오”(루가 17,10)라는 말씀은 그렇게 반갑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조심해야 합니다. 너무 단순하게 오늘 복음의 주인을 하느님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하느님은 우리를 노예처럼 부리는 주인이나 우리를 착취하는 주인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비유와 우화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화는 나오는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지만, 비유는 한 가지 점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비유의 경우 예수님은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시기 위함이지, 결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혹은 주인과 노예가 있는 그런 사회제도가 옳고 그른 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러한 방식의 설명은 루가복음 18장의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하고자 하신 말씀의 의도는 ‘과부처럼 꾸준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쓸모없는 종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유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태도와 입장을 아주 노골적이고도 날카롭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루가복음 12,35-38절에 나오는 주인과 종에 관한 또 다른 비유 하나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인은 오히려 허리를 동여매고 종에게 시중들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과는 정반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인이 종에게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어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루 종일 밖에서 수고한 사람에게 말입니다. 하지만 12장에서는 주인과 종이 자리바꿈을 하고 있습니다. 12장의 주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이나 하느님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는 오직 우리의 자세에만 관심이 있지, 주인의 모습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입니다.

실상 하느님 앞에 우리는 쓸모없는 종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한낱 피조물이라는 것을 상기해 보십시오. 하느님은 우리를 무(無)에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며 오히려 우리 스스로 종이라고 자처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옹기그릇 이야기 (이사야,예레미아)에서처럼 우리는 하느님 앞에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옹기 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이 규칙서에서 말씀하시는 겸손도 바로 이런 자세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것을 모두 지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마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진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와 함께 언제나 같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실재로 하느님의 종밖에, 하느님 앞에 노예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종으로 취급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 ․ 딸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당신 아드님의 형제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오늘 들은 쓸모없는 종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느님과 어떤 계산을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어떤 보수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행에 대한 상급도, 심지어 우리가 당한 고통에 대해 하느님께 해명을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배상을 요구할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오늘 복음의 전반부). 겨자씨보다 못해도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권세를 믿고 인정합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은 다른 비유들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루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를 보고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가장 정확하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 앞에 우리의 위치를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쓸모없는 종과 사랑받는 자녀라는 이중의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우리는 하느님앞에 계산할수 없으며 권리를 주장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특히 남들보다 더 많이 무엇인가 했다고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은 선물입니다. 어떤 보수나 보상을 바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분의 선물은 우리의 모든 기대를 능가하는 엄청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린토 1서 2,9에 이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눈으로 본적도 없고, 귀로 들은 적도 없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떠 오른 적도 없는 것들을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련해 주셨도다.”

마지막으로 오늘 복음의 가르침을 잘 요약하고 있는 오늘 본기도를 바치며 강론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라틴어 원문에 가깝게 제가 해석했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풍요로이 넘치는 당신 인자하심으로 저희 공로보다, 그리고 저희 바램보다,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위에 당신의 자비를 쏟아 주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