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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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부활대축일 낮미사(수도원 화재와 사랑과 일치의 불): 인 끌레멘스 신부 07-10-14 22:51: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35   
알렐루야, 찬란한 아침 햇살과 함께 부활의 아침이 환히 밝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파스카 성삼일의 마지막 날인 부활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더 지금까지 걸어온 우리의 발걸음을 잔잔히 살펴봅시다. 거룩한 삼일의 시작인 성목요일 저녁에 주님 만찬미사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최후만찬을 기념했고, 성금요일 오후 3시 주님 수난 예식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음을 기념했으며, 성토요일에는 특별히 시간전례를 통하여 주님께서 저승에 내려가셨음을 기념했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부활 성야미사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죽음의 어둠 속에서 찬란한 광명으로 부활하신 그 놀라운 사건을 기념했습니다. 이제 오늘 다시 한 번 더 주님의 부활을 떠오른 태양 빛 안에서 낮미사로 기념합니다.

우리 공동체 모두는 지금까지 지내온 성삼일과는 달리 올해 성삼일은 전혀 새로운 성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금요일 새벽에 발생한 원인 모를 화재 때문입니다. 저는 성금요일 새벽부터 오후까지 불이 우리의 삶의 터전을 맹렬히 집어 삼키는 것을 보고 주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죽음의 화마가 주님을, 생명의 주님을 집어삼켰습니다. 건물이 불에 휩싸인 것을 보면서 눈에서 눈물이 났지만 불이 원낙 커서 그 열기에 제 눈물이 말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성토요일 주님께서 무덤에 계시는 날에, 뼈대만 남은 수도원 건물의 앙상한 외양을 바라보면서 무거운 침묵을 느꼈습니다. 더욱이 바람이 심하게 불어 건물에서 재만 남은 잔해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금요일에는 불을 끄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모든 상황이 종료된 토요일에는 이런 심각한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척 산란했습니다. 더욱이 몸만 빠져나온 저를 비롯한 형제들의 허망한 모습을 보면서 한숨밖에는 나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심정과 제자들의 심정은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서 처참히 돌아가시고 묻히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제자들은 분명히 허탈하고 허망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 복음에서 막달라 여자 마리아를 비롯한 베드로와 주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는 빈 무덤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처참히 비명 중에 세상을 떠나신 주님을 보고자 했습니다. 자신들의 추억, 주님과 함께 동고동락을 했던 그 아름답던 추억을 다시 보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기억은 단지 과거에 얽매인 죽은 기억, 과거에 서 벗어날 수 없는 허망한 기억, 희망이 전혀 없는 과거의 기억밖에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 눈에는 비어있는 무덤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은 더 이상 과거의 주님, 과거의 기억 속에만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당신 부활을 통하여 시간의 주인, 역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어제 밤 전례 예식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특히 빛의 예식에서 파스카 초를 축성하면서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신 분을 만났습니다. 아빠스님은 초에 십자 표시와 그리스 알파벳의 처음 글자인 알파와 끝 글자인 오메가, 그리고 올해의 숫자 2007을 연필로 쓰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시작이요 마침이요,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시대도 세기도 주님의 것이오니, 영광과 권능이 영원토록 주님께 있나이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큰 소리로 “아멘”하고 응답했습니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오늘이신 분이 되셨습니다. 좁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 삶의 여정, 넓게는 이 세상의 전체 역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바로 찰라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찰라의 인생을 살고는 있지만 우리네 인생 여정은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인생길에서 갑자기 닥쳐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과 시련을 겪습니다. 과거에 매인 사람은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기가 무척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역사와 시간의 주인이신 분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

저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화재를 새롭게 보고자 노력합니다. 지난 밤 우리는 성당 앞 뜰에서 화로에 타고 있는 불을 축성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성자를 통하여 믿는 이들에게 사랑의 불을 놓아 주셨으니, 새로 마련한 이 불을 거룩하게 하소서.” 이 기도문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 믿는 이들에게 사랑을 불을 놓아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 안에서 금요일 날 있었던 그 불은 우리를 파괴하고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분노와 심판의 불이 아니라, 당신 제자들을 죽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 그 무엇으로도 끌 수 없는 사랑의 불이고 일치의 불입니다. 화재는 이제는 끝났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불은 아직도 또 영원히 꺼지지 않고 우리 모두를 사랑으로 태울 것입니다. 사실 화재가 났을 때 우리 형제들은 모두 힘을 다해 불을 끄고 함께 뒷정리를 하고, 노인 형제들은 몸으로는 같이 못하지만 손에 묵주를 들고 기도로 동참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당신께서 모든 것을 안배해주시고 다 마련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 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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