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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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사순 제3주일 강론: 이 사바 신부 07-10-14 22:40: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70   
오늘은 사순 제 3주일입니다. 우리가 회개와 보속의 시기이고 구원과 은총의 시기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지내고 있는 이 사순시기도 이제 그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의 모습은 하느님의 은총을 맛들여가고 있는 모습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받은 땅을 향해 가면서 광야를 지날 때 이집트 노예 생활에 대해 향수를 느끼고 불평하는 모습을 닮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잘못을 반성합시다.

사순 시기의 중심 주제가 언제나 회개이듯이 두 대목으로 되어 있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모두 회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선포하시고 사랑을 말씀하실 때와 달리 회개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태도는 준엄한 심판관을 느끼게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첫 대목에서 사람들은 그 당시에 일어났던 두 가지의 민족적, 종교적 불행에 대해 예수께 알려드립니다. 하나는 갈릴래아 사람들이 빠스카 축제 때 희생제물을 봉헌하고 있는 동안 빌라도가 그들 중 일부를 학살한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유다의 점령군이었던 로마군이 성전에 난입해서 사람을 학살하고 그 피로 제물을 물들였다는 사실이 유다인들에게는 얼마나 큰 민족적 종교적 충격이며 재앙이었을지 쉽게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실로암 탑이 무너지면서 열여덟 사람이 치여 죽은 사실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민족적이라고 이야기하기는 뭐해도 인간적인 큰 불행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얘기를 들으시는 예수님의 대답은 한결 같이 똑같습니다. “나는 말하거니와, 회개하지 않으면 여러분도 그렇게 망할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이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 어떤 민족적이고 인간적인 동정이나 연민 혹은 분노를 표현하시는 대신 냉정한 입장에서 회개에 대한 가르침의 예로 삼으셨는지 혹은 이것이 복음사가의 신학적이고 사목적인 관심에서 나온 의도적 편집이었는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우리가 늘 보아왔고 기대해온 예수님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으며 차이가 큰 만큼 회개가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 강하게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대목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심어놓고 삼년을 기다렸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을 본 주인이 그 나무를 잘라버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포도원지기가 나서서 그 나무를 특별히 돌볼 1년의 시간을 유예 받습니다. 이 비유는 틀림없이 하느님의 자비로우심과 인내로운 기다림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비와 인내는 영원한 것이 아님을 동시에 알려줍니다. 열매를 맺거나 잘라져버리거나 할 시간은 1년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에서의 이 1년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되는 기간인지 따지는 것은 비유의 핵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시간이 한정적이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인간의 회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포도원지기의 마지막 한 마디 ‘아마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내년에도 맺지 않거든 잘라버리십시오’라는 말에 담겨 있습니다.

성서의 다른 곳에서도 자주 나오는 주제이지만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하나는 생명으로 통하는 회개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파멸로 이끄는 굳은 마음, 돌심장의 길입니다.
사실 사순 시기를 통해 계속해서 회개의 호소를 듣고는 있지만 회개하는 것,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다른 명령들, 예를 들어 사랑하라는 명령이나 기뻐하라는 명령 혹은 믿으라는 명령처럼 회개 역시 우리 마음이 움직여야지 실행할 수 있는 것이지 그저 마음을 먹는다고 저절로 따를 수 있는 그런 명령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도 제 마음이 하느님의 그런 호소에 쉽게 움직이지 않을 만큼 굳어있음을 발견합니다. 회개하고 싶지만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싶은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회개를 통해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 자체가 은총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회개를 하고 싶다면 하느님을 바라보고 나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며 그 하느님께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느님께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맡길 때 그분은 진홍같이 붉은 우리의 죄를 양털처럼 희게 만드시며 우리의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살 심장으로 바꿔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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