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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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7주일(설): 인 끌레멘스 신부 07-10-14 22:37: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83   
음력 새해입니다. 날은 흐리지만 분명 새로운 날은 시작되었습니다. '설'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입니다. 설이라는 말은 '설다', '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해에 대한 낯설음입니다.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해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으로서 새해에 통합되기에는 익숙하지 못한 단계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네 조상들은 해가 바뀌면서 상서롭고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빌고, 조상이나 어른 또는 이웃끼리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의미에서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진행되며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고 조심한다는 뜻에서 설을 지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베네딕도회 수도자로서 새해를 맞이하여 무슨 마음을 갖추어야겠습니까? 다름 아닌 오늘 복음 말씀에 따라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을 갖추어야 됩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 복음인 평지 설교, 곧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에 이어서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한테 무조건적인 요구를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라, 자신이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똑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 주라, 심판하지 마라, 용서하라.”

새해 첫날인데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답답한 마음이었습니다. 고개가 자연스럽게 밑으로 떨어지고 휴 하고 한숨만 나왔습니다. 강론을 하고 있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모질기 때문입니다. 내 꼴아지가 다른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기에는 한없이 부족한데 이런 요구를 하시니 힘만 빠지는 것입니다.

며칠 전 형제들이 잔디밭에 불을 놓아서 잔디가 까맣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황량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모질고 모진 말씀의 불이 내게 다가오자마자 내 마음도 잔디처럼 새까맣게 불에 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봄이 되면 다시 푸른 싹이 솟아나고 멋진 색깔을 뽐낼 것이라고. 잔디를 자라게 하는 것은 잔디의 내적 힘도 작용하지만, 그보다는 알맞은 때에 내리는 비와 따뜻한 햇볕과 바람이 그렇게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의 대지를 생명의 대지로 만드는 비와 햇볕과 바람과 같이,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자비 지극하신 힘으로 우리를 다시 푸르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용기를 얻습니다. “하느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십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자비로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한 사람들입니다. 은수자들과는 달리 회수도자들은 너무 나약해서 형제들의 도움과 격려를 필요로 하는 수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비하심을 직접 우리 마음에 베푸시지만 많은 경우 형제들의 손을 통해 당신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수도원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실제로 체험하고 또 우리가 받은 자비를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슬픈 것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청하는 일이 드물고, 또 그런 도움을 받는 일은 더욱 드물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형제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두 가지 면에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째는 다른 사람의 과거로부터 죽어야 하고, 둘째는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로부터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에 대한 ‘잘못된 기대’가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분노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분노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원하는 것이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때, ▲원하지 않은 것이 우리에게 일어날 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행동해 주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분노를 그 해법은 인생과 인간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분노에 속지 않으려면 기대를 조금 줄이고 사람과 공동체에 대해 절대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가 감히 무엇에 성낼 수 있겠습니까. 분노는 오만입니다. 겸허한 영혼은 분노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노조차 부끄럽게 받아들여라. 쑥스럽게 웃어버려라. 자기가 없다면 분노도 없다는 걸 명심하라. 분노가 관리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은 존재할 수 없다. 분노가 인간을 삼킬 테니까.”

형제 여러분, 새 날이 밝았습니다. 이 새해 첫날 우리는 하느님 자비하심의 도구가 되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사람은 자비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자비가 필요할 때 형제들의 도움을 용기있게 청하는 사람이 됩시다. 자비와 도움을 베푸는 것도 용기이고 또 필요할 때 자비와 도움을 청하고 받는 것도 용기입니다. 새해 하느님의 복 많이 받으시고 또 새해 하느님의 복 많이 베푸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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