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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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성탄 대축일 낮미사 (2006년) 07-10-14 22:34: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026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대림초의 불이 하나씩 하나씩 켜질 때마다 우리 마음은 더욱 아기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 갈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모두가 잠든 밤 깊은 침묵 가운데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했습니다. 어제 성탄 밤 미사를 마치고 수도 형제들과 성탄 인사를 아주 기쁜 마음으로 나누었습니다. 재미있던 것은 성탄 인사를 나눌 때 우리 수도원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학 와서 우리 공동체와 함께 살고 있는 이동 신부님에게서 중국말을 배웠습니다 (그것도 단 한 마디). “썽딴 쿠아일러!”(우리 말로 하자면 ‘성탄 쾌락’)라고 합니다.

그런데 웃으면서 기쁜 마음으로 성탄 인사를 나누었지만 제 마음 한 구석에는 약간 슬픔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해마다 성탄이 올 때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만족보다는 후회가 많이 앞섭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해서 성탄을 맞이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올해도 역시 만족보다는 ‘좀 더 잘 준비할 것을 왜 못했을까’ 하는 후회 아닌 후회가 앞섭니다. 이런 부족한 마음이 드는 것은 저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12월 22일 금요일 미사 복음 환호송과 저녁기도 성모의 노래 후렴에서 “모든 이가 갈망하는 분이시여, 흙으로 빚은 인간을 구원하러 오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흙으로 빚은 인간”이라는 말이 제 귀를 때리자마자 갑자기 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제가 이번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많이 피곤하고 몸에 힘이 없어서 기도 시간에 많이 빠져서 그런지 몰라도, ‘흙’이라는 아주 평범한 단어가 제 마음을 크게 와 닿았습니다. 흙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의 연약함 불완전함 보잘 것 없음을 뜻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2코린 4,7에서 이미 말했지만, 우리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너무나도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외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 우리는 건강에도 무능하고 기도에도 무능하고 일에도 무능하고 또 사랑하는데도 무능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바로 이 시간 이 자리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흙으로 오셨습니다. 당신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지니신 분이 되셨습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무능한 분이 되셨습니다. 강건한 분께서 약한 분이 되셨습니다. 영적인 분이 육적인 분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은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처하셨다”는 아주 짧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육신이 되셨다는 것은 직역하면 “살덩이리가 되셨다”이고, “우리 가운데 처하셨다”는 직역하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입니다. 이 만큼 하느님께서는 이 지상에 사는 우리와 똑같은 조건을 지닌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흙으로 된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신 전례 없는 이 사건은 바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더 나아가 전 인류를 하느님께서 참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랑의 사건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에서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그렇습니다, 부족한 우리이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이신 갓난아기를 뵙고 우리의 나약함을 우리의 부족함을 예물로 드리고 그분을 우리 맘에 맞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요한복음의 말씀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입니다. 흙으로 된 한계가 많은 사람이지만 우리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화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당신 장막을 치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나를 바라보면 후회와 어둠과 실망만 앞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믿고 신뢰하고 그분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제 밤 레오 대교황의 성탄 강론에서 우리가 들었던 바대로, 우리의 고귀한 품위,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느님다운 품위를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2독서에서 들은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는 내 아들, 오늘 나는 너를 낳았노라. 나는 너의 아버지가 되고 너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느님의 아들딸이 된 우리에게 오늘 아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성 프란치스코는 같이 사는 형제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님이 그대에게 주시는 것 외에 형제들에게 다른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었으면 하고 바라지 말고, 오히려 있는 그대로 그들을 사랑하십시오.” 또 성 베네딕도도 같은 의미에서 규칙서에서 말씀하십니다. “결점은 미워하되 형제들은 사랑할 것이다” (규칙 64,11). 형제자매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오늘,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쳐하시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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