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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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제30주일: 인 끌레멘스 신부 07-10-14 22:33: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933   
이제 2006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 10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가 걸어온 한해를 다시금 생각하면서 내일을 향해 나아가야할 시기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는 것, 예수님을 더욱 똑똑히 아는 것, 예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내가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의 목표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다 허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소경 걸인이 등장하고 그는 예수님 덕분으로 다시 시력을 회복합니다. 외적으로만 본다면 이 이야기는 복음서 전체에서 나오는 여러 치유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치유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이야기를 통해서 베드로를 위시한 기존의 12제자들과 이 소경 걸인 이 둘을 대조시키면서 참다운 제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과 일행들은 예리코를 떠나는 시점에 있습니다. 예리코는 예루살렘 북동쪽 36km 쯤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로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중요한 도시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원쯤). 바로 이곳 예리코를 떠날 때 바르티매오의 치유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첫 구절인 10,46에서 소경걸인 바르티매오는 “길가”에 앉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이 사람이 치유된 다음에 마르코는 10,52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는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길"이라는 단어를 2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말로 “호도스”(odos)라고 하는 “길”이라는 단어는 바로 마르 8,27에서 시작하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길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비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은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3번에 걸쳐, 당신 앞으로 당하실 사건에 대해서 말하십니다. 곧 당신께서 예루살렘에서 대사제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한테 배척을 받아 수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고 예고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여행길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예루살렘이고 수난과 죽음을 향한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행길에 동행하고 있는 12제자들은 사실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당신 죽으셔야 한다고 첫 번째 예고를 하시자마자, 바로 직전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신앙 고백을 했던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적합니다. 200주년 성서에서는 “베드로가 그분을 잡아당기며 책망하기 시작했다”고 하고, 새 번역 성경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고 질책하십니다. 또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하시자마자 야고버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을 실 때 한 사람은 오른편에 다른 사람은 왼편에 앉게 해달라고, 다시 말해서 자신들을 다른 제자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다른 열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12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이 여행길은 바로 출세의 길, 영광의 길, 편한 길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만 예수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12제자들 앞에 오늘 바르티매오는 참된 제자로서 등장합니다. 오늘 복음 끝에 마르코는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이 말은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예수님의 길, 다시 말해서 수난과 죽음을 통한 부활의 길을 따라 나섰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육신적으로는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지만, 내적으로는 참으로 보는 정상인입니다. 반면에 12제자들은 육신적으로 앞을 보는 정상인이었지만, 내적으로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반면에 12제자들은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을 용감히 걸어가시는 참되고 실제적인 예수님을 내적으로 보고 그분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지만, 12제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허상의 예수님을, 영광과 출세의 길, 편한 길을 가는 거짓 예수님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에서 마르코 복음사가는 바르티매오와 12제자들을 대조하면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통과 수난을 통한 영광의 길입니다. 고통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성 베네딕도는 수도 규칙 머리말 끝에서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 길을 달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 그렇습니다. 마음이 넓어지고 사랑의 감미로 하느님의 계명을 달리게 되는 것은 거저 공짜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온갖 어려움을 참아냄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 (Passio Christi)에 동참해야지만 얻는 것입니다. 수도생활이나 혼인 생활이나 다 인내의 길,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 길 끝에는 반드시 영광과 승리, 기쁨과 감미로움이 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첫 서원을 앞두고 1989년에 서원 청원서를 공동체 앞에 제출했을 때, 그 자리에서 아빠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수련을 거치면서 우리 공동체의 장점과, 특히 약점과 나약한 점을 다 알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공동체에 여러분이 함께 살기로 다짐하면서 청원서를 내었습니다.” 영적으로 인간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서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의 연약함, 같이 사는 사람의 연약함, 내가 속한 공동체의 연약함과 약점과 어려운 점들을 인내로이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곧 주님께서 앞서 걸어가신 수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르티매오와 함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길을 앞서 가시는 예수님께 마음을 다하여 청합시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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