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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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성모승천대축일(8/15): 인 끌레멘스 신부 07-10-14 22:31: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776   
우리는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시작하면서 입당송을 그레고리오 성가로 노래했습니다. 입당송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으니, 한 여인이 태양을 입고 발밑에는 달이 있고, 머리에는 열두 별이 달린 면류관을 쓰고 나타났도다.” 교회의 유구한 전통과 많은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이 여인을 마리아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나자렛이라는 산골 마을의 한 소녀를 기리고 있습니다. 마리아, 히브리말로는 ‘미리암’이라고 하는 처녀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처녀가 복되신 동정녀이시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심을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성모님은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혼과 육신으로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고 지금 영광중에 계심을 다함께 경축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주 평범한 두 여인이 만나는 것을 봅니다. 바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서로 만납니다. 외적으로 보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만남입니다. 그러나 이 만남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결코 평범한 만남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들은 하느님을 체험한 여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2살 또는 14살 쯤 된 소녀 마리아는 길을 떠나 갈릴래아에서 엘리사벳이 사는 유다 산악 마을로 서둘러 갔습니다. 보통 나흘 쯤 걸리는 길이었습니다. 어린 소녀가 혼자 이 길을 가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 마리아는 이미 자의식이 있는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직접 하느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이 체험이 마리아의 마음을 움직여 친척 엘리사벳을 만나게 했던 것입니다. 반면 엘리사벳은 자기 남편인 즈카리야를 통해서 하느님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여인입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 안에서 자라고 있는 하느님의 신비를 보았고 엘리사벳은 마리아 안에서 자라고 있는 하느님의 신비를 보았습니다. 서로 안에 성장하고 있는 하느님의 이 크신 신비 앞에 이 두 여인은 놀라워할 뿐이고 자신들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뿐입니다.

흔히 우리는 여자들은 눈물이 많고 약하고 가냘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맞지 않음을 저는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지난 12월 초에 중국 북경 중앙 신학교에서 중국 신부들에게 한 주간 동안 전례 강의를 했습니다. 마침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천진 교구에 사제 서품이 있어서 초대받아 갔습니다. 서품식이 끝난 후 중국 신부들과 함께 천진 교구를 둘러봤습니다. 그때 한 수녀 공동체를 방문했습니다. 이 수녀님들은 재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인 옛 성당에 무단 점거하고 몸으로 사수하고 있었습니다. 시 당국자들은 수녀님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여자들은 남자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 수녀님들이 강한 이유는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 주님께 대한 믿음을 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칭송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시니 복되십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을 신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고 깨어 기도하시는 동정녀로 만납니다. 마리아의 신앙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전제 조건이요 길이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복되신 마리아께서는 믿음으로 잉태하신 분을 믿음으로 낳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이는 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약한 여자이지만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진심으로 믿는 분이셨기에 어떤 사람보다도 강한 분이십니다.

오늘 미사 본기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마리아의 육신을 그 영혼과 함께 천상 영광에 불러드리셨으니, 저희도 언제 주님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이 기도문에서 마리아께서는 영혼과 육신이 온전히 하나로 천상 영광 가운데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경우에, 우리 자신 안에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어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과 몸이 서로 일치를 못 이루고 있습니다. 마음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지만 내 몸은 자꾸 다른 방향으로 갈려고 합니다. 내 안과 내 밖이 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또 나와 너가, 남성과 여성이 서로 벽으로 가로 막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이 서로 대립하고 있기도 하고 수도 공동체 안에서도 장상과 수하 형제가, 또 이 형제와 저 형제가 서로 불신을 겪기도 합니다.

지금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하나로 통합되어 하늘에 계시는 성모님께서는, 이미 이 땅에서 영혼과 육신이 하나로 사셨던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서로 대립되는 것이 서로 통합되어 있는 분으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성모님은 이 지상에 계실 때부터 영과 육이 온전히 하나로 사셨겠습니까? 순전히 인간의 의지나 인간적인 결단만으로 가능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인간적인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바로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성모님은 놀라운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영과 육이 통합된 인간으로 이 지상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성모님을 온전히 하나인 인간, 영혼과 육신을 함께 하늘나라로 들어 올리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모승천 대축일인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히 통합된 인간으로, 서로 대립되는 것이 하나로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 안에는 분리, 대립, 갈등, 불신이 없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를 체험한 사람은 그 사람 안에는 대립과 갈등을 뛰어넘는 조화와 일치와 평화가 넘치고 모든 것이 하나가 됩니다. 이러한 상태, 곧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삶이 바로 하늘나라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조금 후 미사 감사송에서 “오늘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천주의 성모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 세상 나그네 길에 있는 주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안을 보증해 주셨나이다” 하고 노래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 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통합된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위안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기도합니다. 기도는 무엇을 얻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이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나 어떤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바로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다. 곧 우리의 인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기도를 향해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내가 지닌 오만과 남의 도움을 거부하는 자존심과 독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는 겸손을 배우고 은총을 체험하는 기회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목적에 미약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를 희망합시다. “주님, 저희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최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마리아처럼 당신 뜻을 행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시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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