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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진 토마스 신부 07-10-14 22:27: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148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안드레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옛 러시아 미술사의 가장 유명한 화가는 15세기 안드레 루블료프 수도자입니다. 그가 그린 이콘 중 가장 유명하게 알려진 그림은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인데 여러분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세 천사 같은 분, 꼭 같이 생긴 세분이 상 받고 앉아 있는 '이콘'입니다. 가끔 이 그림에 "구약의 삼위일체"라는 제목이 붙기도 합니다. 세 천사가 모두 지팡이를 짚고 있는 나그네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화가는 틀림없이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분의 나그네가 아브라함의 환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18,1절에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마브레의 참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묘하게도 한분이 나타나셨는지 세분이 나타나셨는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복수와 단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그가 눈을 드렁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은 하느님 한분하고만 대화하는 것 같이 묘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안드레 루블료프는 이 장면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고, 그것을 삼위일체의 예형으로 보았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그림인데 그래도 이 이콘을 보고 삼위일체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잘못 생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나란히 앉아 계시는 세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한분이시지 세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 부분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 무엇을 Persona 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위(位)'라고 번역합니다. 그 위라는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 수 없는데 그 세 위가 같은 하느님, 같은 한 하느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믿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고 정도의 차이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것이 있다면 서로의 관계입니다. 서로의 관계만은 다릅니다. 일정한 순서가 있고 그 순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하지, 성령, 성자, 성부라고 하면 안 됩니다.

아버지는 원천, 근원입니다. 그래도 아들은 아버지 보다 못한 것이 없고 꼭 같은 하느님의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솟아나옵니다. "발하신다"고 합니다. 신학자들은 성령이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로부터 발한다고 표현합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말도 하기 싫습니다. 삼위일체라는 것은 너무 큰 신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아예 파악할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에 아예 침묵을 지키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성서에는 삼위일체라는 거창한 표현은 나오지도 않습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도 이 말을 몰랐습니다. 전례 가운데에서도 오늘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삼위일체 축일도 옛날 교회에는 없었습니다. 중세기말(1334)에 생긴 축일입니다. 본래 우리 전례의 축일들은 구원사와 관계가 있습니다.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업적을 기억하는 기념제를 지내왔습니다. 오직 중세기 말부터 추상적인 내용을 가진 축일들이 생겨났습니다. 삼위일체 대축일, 성체성혈 대축일, 근대에 생긴 그리스도왕 대축일 등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에 우리가 베드로와 바오로는 몰랐던 그 개념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에 삼위는 꼭 같다. 서로의 관계만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관계의 종교라고 합니다. 삼위일체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한분이신데, 그 한 분 안에 관계들이 있고 친교가 이루러 지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일치 속에 서로의 관계라는 것이 있는데, 이 관계의 하느님은 당신 밖에 어떤 것과의 관계를 찾아서, 당신 밖에 있는 어떤 것을 만드셨습니다. 여기에 창조의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계의 하느님께서 당신 밖에 어떤 것과의 관계를 원하셔서 피조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위해 하느님은 깨닫고 사랑할 수 있는 피조물인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또 인간 중 한 백성을 택하셔서 그 백성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뽑으시어, 하느님께서는 그들과 계약을 체결하셨고 친교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그 백성 가운데 한 처녀를 택하시고 하느님의 성자가 한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영원으로부터 하느님 안에 계속되는 성부와 성자의관계가 이 지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승천하셨지만 성령을 통해 믿는 사람들 안에서 그 관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니 우리는 이제 삼위일체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의 기도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 6장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이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으니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물론 성자와 꼭 같은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성부와 성자 사이에 흐르는 생명력에 우리도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성령을 받아 성부와 성자와 깊은 관계를 맺었고, 성서의 말씀과 성체 성사를 통하여 그 관계가 계속 깊어집니다.

성인들 가운데 신비체험은 한 분들은 어떤 때 그런 관계를 체험으로 깊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신앙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 생명, 당신 안에 흐르는 생명에 참여하셨던 은혜에 대해 깊이 감사합니다. 그 관계 속에 계속 살고 그 관계에서 떨어지지 않게 해 주시라고 간청 드립니다.

아까 시작에서 말씀드린 대로 삼위일체의 개념이나 교리 및 그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자녀로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제로 자처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 것, 성령의 감도를 받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미사 시작에 인사말로 사용되는 코린도 2서 13,13의 말씀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를 옳게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것,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하여 사는 것
성령을 통하여 친교를 맺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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