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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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사순 4주일(나해) - 빛으로 나아갑시다!: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22:22: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521   
사순 제4주일(나해) 강론 (06.3.26)
제1독서: 2역대 36,14-16.19-23
제2독서: 에페 2,4-10
복 음: 요한 3,14-21
빛으로 나아갑시다!

어느새 사순 제4주일입니다. 이번 주일을 일컬어 흔히 장미주일이라고도 합니다. 길고 무겁게 느껴지는 사순시기 중간 무렵 환희와 기쁨을 표현하는 뜻에서 이렇게 부르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례사제도 장밋빛 제의를 입습니다. 예전에는 사순시기에 왜 이런 화려한 색의 제의를 입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도 장밋빛 제의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 전례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 여행길을 가는 중간에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순 제4주일에 이렇듯 부활의 기쁨과 환희를 보여주는 것은 이 시기를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를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이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습니다. 복음을 자세히 보면 오히려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주일의 중심 주제는 하느님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사가 그렇듯이 모든 것은 양면성을 지닙니다. 구원이 있으면 멸망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습니다. 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합니다. 우리가 방금 들은 복음은 빛과 어둠의 대조를 통해 이런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둘의 대조를 통해 우리 인간 현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며 우리를 빛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요한 3,19) 빛은 진리, 곧 그리스도이고 어둠은 악의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어두웠던 이 세상에 빛이 왔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빛을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빛이 구원이요 해방이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빛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요한의 표현에 따르면, 전자는 진리를 따르는 자이고 후자는 악행을 일삼는 자입니다. 진리를 따르던 자들은 진리 자체인 빛이 왔을 때 빛으로 나아갔습니다. 반면 악행을 일삼던 자들은 빛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들은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두려워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더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빛입니까 아니면 어둠입니까? 선을 행할 때 우리는 빛으로 나아가게 되고 악을 행할 때 어둠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빛으로 나아가기 위한 또 다른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빛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빛으로 나아가고 빛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진리에 대한 갈망과도 같습니다. 진리에 대한 갈망 자체가 없으면 진리 추구에도 관심이 없게 됩니다. 예컨대 빛을 원하지 않는, 진리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빛이 성가시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빛에 대한 갈망과 선행 실천이라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빛을 맞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는 빛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습니다. 악행을 일삼는 어둠속 생활은 빛이 심판이 될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더러 빛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문득 반공이 강조되던 시대에 유행했던 표어가 떠오릅니다. 소위 ‘자수하여 광명 찾자’는 별난 표어입니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 당당하게 자유를 누리며 살라는 권고입니다. 우리의 악행은 우리를 빛에서 멀어지게 하고 계속 어둠에 가둘 것입니다. 자수하여 광명 찾듯 이제 우리를 짓누르던 어둠에서 빛으로 나와 참 자유를 누리는 용기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요한복음 여러 곳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 역시 그 빛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참조: 9,5; 11,9) 빛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길을 밝혀 줍니다.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께서는 우리의 인도자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빛을 받게 됩니다. 빛을 받아 그 역시 빛을 냅니다. 이제 예수를 따르는 사람 역시 세상의 빛이 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울로의 말씀대로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에페 2,9) 그래서 거룩한 행실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온갖 악행은 하느님의 작품으로서 우리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그분 영광을 가릴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필립비인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립 2,12)

실상 선행으로 우리가 드러내는 빛은 우리의 빛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자칫 내 빛인 양 착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거울일 뿐입니다. 온갖 악행,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삶은 거울의 때와도 같습니다. 이 때는 거울을 불투명하게 하여 빛을 제대로 반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빛을 가립니다. 반면 우리의 선행, 진실과 정직, 순수함은 거울을 맑고 투명하게 하는 세척제와 같습니다. 이런 도구들로 부지런히 거울을 닦아야 합니다. 그 때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빛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을 비추는 또 하나의 빛, 인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증거요 선교입니다.

아무리 교세확장이다 선교활동이다 해봐야 교회가 또 우리 각자가 빛을 내지 못한다면 다 소용없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복음적 가치를 외친들 교회 자체가 복음적이지 못하다면 얼마나 우스운 꼴이겠습니다. 복음 정신이 우리의 인격과 삶 안에 스며들 때 세상에 빛이 되고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빛은 결코 요란스레 떠벌인다고 드러나지 않습니다. 교회나 공동체의 복음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 각자의 복음적 삶을 통해 저절로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예가 4세기 이집트 수도승 파코미우스 성인의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선행에 감화되어 개종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또 하나의 위대한 등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행과 사랑의 빛은 또 다른 빛을 낳게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 삶은 우리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빛과 어둠의 끊임없는 싸움이란 생각이 듭니다. 때론 어둠이 빛을 억압하고 승리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빛은 어둠을 몰아낼 수 있지만, 어둠은 절대 빛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빛으로 나아가 빛을 반사할 때 이 세상의 어둠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 부활축제를 준비하는 이때 사도 바울로의 다음 권고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2-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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