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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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2주일(나해) - 무엇을 찾느냐?: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22:18: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048   
연중 제2주일(나해) 강론(06.1.15)
제1독서: 1사무 3,3b-10,19
제2독서: 1고린 6,13c-15a.17-20
복 음: 요한 1,35-42

“무엇을 찾느냐”

얼마 전 오랜만에 큰마음 먹고 방에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과거에는 최소한 일 년에 두 차례 짐정리를 하곤 했지만 최근 몇 년 들어 게을러진 나머지 통상적이었던 이 연중행사를 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쌓인 불필요한 물건들과 자료들이 한 아름이었습니다. 그것들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부여되었던 것이었지만 정작은 집착의 찌꺼기들일 뿐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짐정리를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매번 초심을 상기시키고 늘 떠날 자세로 살자는 뜻에서입니다. 이번에 대대적인 정리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집착의 찌꺼기들이 많아서 주님이 부르실 때 어떻게 선뜻 따라나설 수 있겠는가?’

오늘 제1독서에서 사무엘은 야훼의 거듭된 부르심에 즉각 ‘예’라고 응답하며 뛰어갔습니다. 우리가 온갖 집착의 사슬에서 자유롭지 않으면 사무엘과 같은 이런 응답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늘 깨어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응답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리라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무엇을 찾느냐?” 이 질문은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게 깊이 다가왔던 구절입니다. 마치 제게 던진 질문처럼 들렸습니다. ‘너는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느냐?’ ‘무엇 때문에 나를 따르고 있느냐?’ 이 질문을 중심으로 예수 추종의 의미에 대해 좀 더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 추종은 일차적으로 그분이 가신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인격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분과 동일한 가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마음으로 만물을 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결코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적 영예 따위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비움과 포기의 길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추종에는 마땅히 어떤 것에 대한 포기가 전제됩니다. 예컨대, 안락한 삶, 권력지향성, 인간적 야망, 헛된 영광, 지배욕 등을 과감히 던져버려야 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을 안고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 자칫 이런 것들에 걸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 추종의 길은 신분상승의 길도 권력이나 지배의 길도 아닙니다. 그것은 고독한 길, 낮아지는 길, 섬기는 길입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 바보가 되는 길입니다.

김남주 시인의 ‘혁명의 길’이란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하늘의 태양 아래서 이름 빛내며 살기란 쉬운 일이다. 어려운 것은 지하로 흐르는 물이 되는 것이다. 소리도 없이. 밤으로 떠도는 별이 되는 것이다. 이름도 없이.” 이 시를 읽으며 문득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분 제자들의 길이 이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소리 없이 요란스럽지 않게, 하지만 세상에 생명을 주고 빛을 주는 지하수와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수도소명은 일차적으로 예수 추종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 예수를 따르는 것, 복음의 가치들을 철저히 삶으로 증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수도생활의 역할은 삶의 증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도생활의 카리스마적인 역할로 교회가 오늘날 우리에게 요청하는 바라 생각됩니다. 수도자들이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하더라도 이 본래의 소명과 역할에서 멀어진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온 마음과 온 힘을 기울여 예수를 따르는 일, 곧 복음을 철저히 사는 일일 것입니다. 사도직 활동도 여기에 바탕을 둘 때 참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계속 되물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소명에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은 무엇인지 식별하고 늘 본질적인 것을 향해 방향을 재정립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분을 따라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목표와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이렇게 되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왜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그분에게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매년 1,2월은 수도회들 쪽에서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소위 서원 시즌이라 할 정도로 많은 젊은이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합니다. 이번 달은 우리 공동체에게도 매우 뜻 깊고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원자 입회로 시작해서 수련 착복, 첫서원, 서원 갱신, 그리고 내일 있을 종신서원 등 중요한 일들이 모여 있습니다. 공통점은 한결같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입회에서 종신서원까지 전 과정은 예수를 따르기 위한 준비기간과도 같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모든 것은 바로 포기하는 훈련입니다. 포기 없이 결코 예수를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신서원은 이 오랜 포기훈련을 거쳐 본격적인 포기를 시작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서원의 의미는 자기 포기를 통해 보다 더 철저히 예수를 따르겠다는 각오를 공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종신서원과 더불어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 끝, 고생 시작’인 셈입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매번 첫 마음으로, 초기의 열정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4세기 이집트의 어떤 교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분은 한 수도원의 꽤 존경받는 장상이었지만, 늘 새롭게 시작하려는 갈망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형제들 몰래 수도원을 도망쳐 나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갑니다. 그는 신분을 철저히 감추고 그곳에 있는 다른 수도원에 입회하여 지원자로 다시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사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제자들이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지만 허사였습니다. 마침내 사부가 있는 수도원에까지 오게 됩니다. 거기서 다른 형제들과 함께 거름더미를 치고 있던 자신들의 사부를 발견하고 예를 갖추고 돌아가자고 애원을 합니다. 그러자 같이 일하던 형제들은 이분이 바로 그 위대한 교부였다는 것을 알고서는 모두 놀랍니다. 억지로 수도원으로 되돌아간 그는 얼마 후 다시 도주를 합니다.

그에게는 늘 초심자와 같은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만을 찾고 그분만을 소유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요 지향가치였던 것입니다. 이 일화는 현실성은 없어 보이지만 우리 수도생활, 영적여정에서 우리가 잊기 쉬운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즉, 정작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그것에 방해되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항상 처음 시작하는 초심자의 자세로 겸손하게 예수의 길을 따라 하느님께 나아갔던 수도 교부들의 삶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닛사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새로운 시작에서 거듭 새로운 시작으로 다가섭니다.” 멈추는 순간은 죽음의 순간입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해야 할 것입니다. 수도생활도 졸업이 없습니다. 수행에도 기도에도 또 선행과 희생, 포기와 따름에도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부지런히 매 순간 새로운 마음과 자세로 다시 시작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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