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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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제 목 :  연중 28주일(가해) - 초대와 응답: 허 로무알도 신부 07-10-14 22:11: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68   
찬미예수님! 무더위가 끝날 것 같지 않더니 어느새 가을이 도둑처럼 다가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서 요즘은 새벽에 성당 창문이 열려있으면 예민해지곤 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반대였는데, 참으로 우리 몸이 기온의 변화에 이렇듯 민감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두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곧 밝은 면과 어두운 면, 기쁨과 슬픔의 측면입니다. 전자는 잔치와 초대라는 말로써, 그리고 후자는 임금의 진노와 쫓겨남이라는 말로써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복음 말씀을 다시 돌아보면 이렇습니다. 어느 임금이 혼인 잔치를 베풀어 어떤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거듭 초청합니다. 그래도 응하지 않자 임금은 진노하며 거리에서 만나는 아무나 초대합니다. 초대받은 사람 중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쫓아냅니다. 오늘 이 혼인잔치의 비유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몇 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 물음들을 통해서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뽑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임금은 왜 오려하지 않은 사람들을 구태여 거듭해서 초대하는가? 여기서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소위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정작 그들 가운데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분을 배척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고야 말았습니다. 거듭된 초대는 임금의 배려와 관대함, 사랑과 애정을 잘 드러내 줍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의 잔치에 거듭 초대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분의 본질을 깊이 통찰했습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을수록 그분의 초대는 성가심이 아닌 기쁨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물음은 초대받은 사람들은 왜 오려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언급되고 있듯이 그들은 임금의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임금이 베푼 잔치와 초대의 가치를 전혀 몰랐습니다. 세상사에 너무 빠져 세속의 가치들을 추구하고 거기에 맛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소위 세속주의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닫히고 분별력을 잃었습니다. 임금의 초대가 그저 성가시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임금의 말대로 그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일에 너무 파묻히다 보면 복음의 초대받은 자들처럼 계속되는 주님의 초대를 무시하게 될 것입니다.

세속주의는 가치판단을 흐리게 하는 주범입니다. 그래서 정작 참된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세속주의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하나의 병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재물을 모으고, 남을 지배하려고 권력을 추구하고, 온갖 허영심과 명예욕에 빠져 자기를 들어내려고 안달하게 됩니다. 또 육체의 쾌락과 본능적 욕구 충족을 위해 시간과 돈을 과감하게 투자합니다. 반대로 남을 위한, 공동선을 위한 희생과 봉사, 나눔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신앙 안에, 우리 수도정신 안에도 세속주의가 침투할 수 있습니다. 세속주의라는 병균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침투하여 우리 정신을 썩게 하고 공동체를 붕괴시킵니다. 우리 삶 안에 이런 모습은 없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늘 깨어 경계하지 않으면 이 병균에 감염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이나 소임이 권력과 명예,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랑에 의한 봉사요 희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 물음은 이것입니다. 즉,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란 누구인가? 복음을 보면, 임금의 명에 따라 종들은 거리에 나가서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아무나 다 데려왔습니다. 아마도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란 ‘나쁜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예복이란 무엇입니까? 혼인잔치에 참여하기 위한 합당한 자질일 것입니다. 예컨대, 거짓이나 사심이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 세속주의라는 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정신, 자기 욕심이나 뜻을 추구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자세, 남에 대한 희생과 봉사의 자세 등입니다. 우리가 만일 이런 예복을 준비하지 않으면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수도자라는, 또 성직자라는 우리의 신분 자체가 결코 하늘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예복은 아닙니다. 우리 신분은 예복을 만들기 위한 옷감에 불과합니다. 이 옷감으로 예복을 준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더러운 걸레가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수련 때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 즉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는 말씀이 강하게 다가왔던 적이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았다고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 왠지 두렵게 마저 느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수도자로 불렸다는 사실만으로 구원이 저절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 말씀은 계속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싸여 살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종종 삶에 나태해 지려할 때 제게는 경종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영적 마라톤에 참가한 운동선수와도 같습니다. 모두가 출발점을 떠나 결승점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끝까지 완주하여 월계관을 얻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입니다. 마라톤의 전 과정은 바로 우리의 영적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는 중에 때로는 지쳐 쓰러지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들게 됩니다. 요즘 들어 솔직히 이런 의문이 종종 듭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혹시 끝까지 달릴 수는 있을까?

우리는 내가, 우리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전후좌우를 잘 살피고 참으로 구원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자칫 부르심을 받았지만 뽑히지 못하는 낙오자들 대열에 든다면 이 얼마나 애석한 일이겠습니까? 우리의 준비와 선택에 따라 주님의 초대는 기쁨과 희망이 될 수도 있고, 슬픔과 절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복을 잘 준비해서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뽑힌 이들 대열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가문, 베네딕도 가문의 수치가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 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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